하지만 현장의 하루는 계약 체결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고객 상담이 이어지고, 현장 안내 일정이 잡히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문의가 쏟아진다. 수십 개의 매물을 동시에 관리하는 중개사에게는 계약서 작성 이후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과태료 통지서가 날아온다. 이유는 단순했다. 계약이 완료된 매물을 플랫폼에서 제때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장에는 악의적인 허위매물도 있었지만, 단순 실수나 행정 처리 시차 때문에 광고 정리를 놓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계약은 끝났지만 시스템 반영이 늦어지거나 광고 삭제를 미처 챙기지 못하는 일도 있다. 그럼에도 일부 중개사들은 ‘지체 없이 삭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됐다.
결과적으로 시장을 어지럽히는 악성 사업자와 성실하게 영업하는 다수 중개사가 같은 규정 아래 놓이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행정예고한 ‘부당한 중개대상물 표시·광고행위의 유형 및 기준’ 개정안은 바로 이 문제를 손봤다. 표면적으로는 허위매물 관리 기준 개정이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번 변화의 본질은 규제가 아니다. 데이터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의 거래신고 정보가 시장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행정청이 계약 체결 사실을 확인해 통보하면 중개사는 1일 이내 광고를 정리하면 된다. 과거처럼 ‘지체 없이’라는 모호한 문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데이터와 명확한 절차가 기준이 된다.
중요한 변화는 판단의 주체가 사람에서 데이터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기억이나 해석이 아니라 실제 거래 정보가 먼저 움직인다. 계약이 완료됐는지, 언제 완료됐는지, 광고를 언제 정리해야 하는지가 보다 명확해진다. 선의의 중개사는 불필요한 부담을 덜고, 소비자는 더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
어쩌면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의미는 허위매물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허위매물이 발생할 가능성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대한 발상의 전환에 있다.
◇준비된 기술…연결이 시작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 변화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기술은 준비돼 있었다.
프롭테크 업계는 수년 전부터 거래 데이터와 매물 정보를 연계하는 방안을 연구해 왔다. 계약 완료 정보를 기반으로 매물을 자동 비노출 처리하거나 중복 매물을 검수하는 기술 역시 상당 수준 발전했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매물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고, 플랫폼은 방대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은 바뀌지 않았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연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데이터를 갖고 있었고, 플랫폼은 기술을 갖고 있었으며, 중개사는 현장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각각 따로 움직일 때는 시장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번 개정이 의미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공 데이터와 민간 기술, 그리고 현장의 실무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행정청은 거래신고 정보를 제공하고, 플랫폼은 이를 활용해 매물을 관리하며, 중개사는 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허위매물 관리의 무게중심이 사후 단속에서 사전 예방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이는 프롭테크 산업이 추구해 온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프롭테크의 역할은 단순히 앱을 만들고 정보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흩어져 있는 정보를 연결하고, 비효율을 줄이고,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데 있다. 실제로 그동안 업계는 거래 데이터 연계, 매물 검증, 중복 매물 관리, 허위매물 신고 체계 개선 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한국프롭테크포럼을 비롯한 업계도 데이터와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 보호와 시장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 왔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더디고 복잡하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보다 제도를 바꾸는 일이 어렵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더 어렵다. 그러나 시장을 움직이는 변화는 대부분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이 혁신을 이야기할 때 AI나 플랫폼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시장을 바꾸는 힘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에서 나온다.
데이터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데이터를 정비해야 하고, 누군가는 연결해야 하며, 누군가는 현장에서 활용해야 한다. 이번 개정안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규정 개정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선의의 중개사는 보호하고, 악의적인 미끼매물은 더 정확하게 가려낸다. 중개사의 행정 부담은 줄이고, 소비자는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게 된다. 누구 하나를 희생시키지 않고 시장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진화한 셈이다.
부동산 시장은 오랫동안 정보 비대칭의 시장이었다. 정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곧 경쟁력이 되곤 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과 프롭테크의 발전은 시장의 규칙 자체를 바꾸고 있다. 앞으로 경쟁력은 정보를 독점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더 정확한 정보를 더 빠르게 연결하는 데서 나온다. 이번 변화는 그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매물 하나가 제때 정리되는 일, 계약 정보가 정확하게 반영되는 일, 성실한 중개사가 억울한 부담을 지지 않는 일. 언뜻 사소해 보이는 변화지만 시장의 신뢰는 늘 그런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
과태료보다 먼저 움직인 데이터, 그리고 그 데이터를 시장의 신뢰로 바꾸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수많은 현장 전문가들. 어쩌면 이번 개정안의 진짜 의미는 기술이 제도를 바꾼 것이 아니라, 기술과 제도, 그리고 사람이 비로소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신뢰는 규정집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확한 데이터와 이를 연결하려는 협력, 그리고 현장에서 묵묵히 실행하는 사람들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은 그 방향으로 조금씩,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다.
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사진=알스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