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주거 사다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매달 60만원 안팎의 돈을 내면서도 1.5평 방 한 칸으로 내몰리는가 하면, 돈을 모아 전세로 가고자 했던 이들마저 다시 월세로 밀려나고 있다. 개강을 앞둔 대학가에서는 치솟는 월세에 원룸 대신 고시원이나 하숙을 찾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청년들의 주거 선택지가 줄어든 데에는 임대 물량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30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빌라촌에 '원룸문의', '하숙' 홍보 문구가 붙어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이날 창천동 먹자골목의 한 건물 4층 고시텔에는 연세대 2학년 박모(22)씨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이사왔다. 충청권에 본가가 있는 박씨는 개강을 앞두고 1.5평 남짓 방 한 칸에 계약금 10만원·월세 55만원을 내고 들어가기로 했다. 학교 앞 원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탓이다. 박씨와 동행한 모친 50대 A씨는 “딸이 좁은 곳에 사는 게 마음이 쓰인다”면서도 “학교랑 멀더라도 좀 저렴한 집을 얼른 구하거나 할 생각으로 한 학기만 계약했다”고 했다.
실제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가격은 상승세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요 10개 대학가 원룸(보증금 1000만원·전용면적 33㎡ 이하) 평균 월세는 62만5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58만1000원)보다 7.7% 올랐다. 반지하도 저렴하지 않았다. 건국대와 세종대 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광진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리모델링해서 깔끔한 반지하 방은 50만원 이상은 줘야 한다”고 했다.
전세보다 월세 거래가 많은 시장 구조도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을 키우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올 1~7월 서울 연립·다세대·오피스텔 임대차 거래 10건 중 7.3건(73.07%)은 월세였다. 최근 3년간 같은 기간 월세 비중은 △2023년 52.41% △2024년 58.69% △2025년 65.25%로 매년 증가세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주거비 부담은 대학생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세를 구하려던 청년들마저 다시 월세로 밀려나고 있다. 3년차 직장인 김모(27)씨는 취업 전부터 살던 마포구 공덕역 인근 월세집 계약 만료를 6개월여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전세로 옮겨가려 했지만 마땅한 매물이 없어 서울 외곽에서 또 다시 월세집을 구해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세로 해야 주거비 부담이 줄어 자금도 모을 텐데 또 월세를 구해야 할 것 같다”며 “그마저도 부동산 오픈런을 해가며 집을 보러다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임대시장 옥죄는 세제…결국 청년 주거비 부담으로
이 같은 청년 주거비 상승 배경에는 임대 물량을 위축시킬 수 있는 세제·규제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8·3 세제개편안에서 비거주·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혜택이 줄어들며 임대인이 주택을 매각하거나 실거주로 전환하고, 기존 전세를 월세로 돌릴 유인이 커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정부가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단계적으로 축소·폐지하기로 하며 임대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가 국토교통부 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에 등록된 민간임대주택 중 비아파트는 29만2323가구에 달한다. 임대사업자의 보유·매각 여부에 따라 전월세 시장의 공급 여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4주택 이상 보유자 통계를 보면 보유 주택 중 비아파트가 많다”며 “이들에 대한 과세가 늘면 그게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비판했다.
결국 임대인의 비용 부담이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지고 그 부담이 다시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2018년부터 연세대 인근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A씨는 “안 그래도 임대인이 종합부동산세를 얘기하며 임대료를 올려서 저희도 덩달아 모든 방 월세를 5만원씩 올렸다”며 “다 올라가니까 어쩔 수 없이 올려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인근 고시원 업주는 아예 사업을 접을 생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세금 많이 낸다고 월세를 올리니까 저희 같은 임차인들은 사업이 아무리 잘 돼도 어렵다”며 “자가로 운영하는 경우가 아니면 힘들어서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 두는 것도 고민 중이다”고 했다.
30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먹자골목에 고시원이 들어서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임대주택 공급을 위해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임대사업 관련 제도가 5년, 10년 마다 계속 바뀌다 보니 임대인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않게 되고, 결국 공급 축소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임대정책은 일관성을 갖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공임대와 개인 임대사업자에 더해 장기간 임대주택을 보유·운영할 수 있는 민간 기업을 새로운 공급 주체로 육성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영국에서는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지어 장기간 보유하고 운영하는 ‘빌드 투 렌트(Build to Rent)’를 민간임대시장의 한 유형으로 보고 계획 체계에 반영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을 제안하는 공유주택 ‘맹그로브’ 운영사 엠지알브이(MGRV) 조강태 대표는 “전세에서 월세로 중심이 이동하며 임대주택을 누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할 것인지도 중요해졌다”며 “주택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기업도 공급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