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전경
미술품이나 빌딩 등을 여러 명에게 쪼개 투자하는 '조각투자'와 사실상 같은 의미로 혼용돼 온 토큰증권의 개념이 명확히 구분된다. 금융위원회가 토큰증권을 특정 투자상품이 아니라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증권을 발행·관리하는 '형태'로 명확히 하면서다. 미술품·부동산뿐 아니라 주식과 채권, 펀드도 토큰 형태로 발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금융위는 4일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3차 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토큰증권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조각투자에 집중돼 온 토큰증권의 활용 범위를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증권 전반으로 넓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사실상 같은 의미로 사용돼 온 조각투자와 토큰증권의 개념도 분명히 구분했다.
그동안 토큰증권 논의는 미술품과 부동산, 음원 등 조각투자 상품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토큰증권이 조각투자를 위한 수단이나 조각투자 상품 자체를 의미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토큰증권과 조각투자라는 용어가 별다른 구분 없이 혼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개념은 엄밀히 다르다. 조각투자는 기초자산이나 권리를 여러 투자자가 나눠 투자하는 '상품 구조'다. 반면 토큰증권은 특정 상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증권을 분산원장에 기록해 발행·관리하는 '형태'다.
이를테면 100억원짜리 건물에서 나오는 수익을 1만개로 나눠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투자자들이 건물에서 발생하는 임대수익 등을 나눠 받기 때문에 조각투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를 기존 전자증권 방식으로 발행했다면 토큰증권은 아니다.
반대로 일반 주식이나 회사채도 분산원장에 기록해 토큰 형태로 발행하면 토큰증권이 될 수 있다. 투자 대상이 미술품인지 주식인지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 증권을 발행·관리하느냐가 기준인 셈이다.
금융위도 토큰증권을 증권의 '내용'이 아닌 '형태'에 따른 구분으로 규정했다. 내용상으로는 채무증권·지분증권·수익증권 등으로 나뉘지만, 형태상으로는 실물증권·전자증권·토큰증권으로 구분된다는 설명이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토큰증권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해외에선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 한정하지 않고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증권을 분산원장을 활용해 발행·관리하는 방식 전반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금융위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머니마켓펀드(MMF) 토큰 '비들(BUIDL)'과 홍콩의 녹색 국채 토큰화 등을 사례로 들었다.
해외에선 조각투자 상품뿐 아니라 기존 증권의 토큰화가 추진되는 만큼 국내 제도도 이에 맞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주식·채권·펀드 등을 토큰 형태로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정책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토큰증권의 범위는 시장의 안정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내년 2월에는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MMF와 사모사채를 우선 토큰화한다. 미술품·부동산 등 공모 조각투자증권의 토큰 발행도 허용된다.
주식은 비상장주식부터 시작한다. 비상장주식을 예탁결제원이나 신탁업자에 맡긴 뒤 해당 주식에서 발생하는 권리를 토큰 형태의 신탁수익증권으로 발행하는 방식이다. 의결권·배당 등 원래 주식에 얽힌 권리는 기존 전자증권 시스템에서 관리하고, 토큰증권 시스템에서는 신탁수익증권에 관한 권리를 관리한다.
이후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공모 증권 등으로 토큰화 범위를 넓힌다.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상장주식 토큰화 모델을 검증하는 시범사업도 추진한다. 장기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연계해 토큰증권 매매와 대금 지급을 분산원장 위에서 처리하는 온체인 결제 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여러 기초자산을 묶어 하나의 상품으로 만드는 '풀링'도 조건부로 허용한다. 기존 규제 샌드박스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여러 자산을 묶는 것이 제한됐지만, 앞으로는 동일한 종류의 자산이고 집합화 기준과 목적이 명확한 경우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허용한다. 규모가 작아 개별적으로 상품화하기 어려웠던 자산도 여러 개를 묶어 하나의 조각투자증권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만 머물게 하지 않겠다"며 "전략적·단계적 접근을 통해 주식, 채권, 펀드 등 기존 금융상품도 토큰 방식으로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chsn12@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