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역 이야기 조명하는 케이블TV...지방에 ‘활력’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7월 01일, 오전 10:41

[황희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홍게 알리미, 포도 청년 농부, 나무 의사, 해산물 중개인 부부, 경주말 여 조련사, 대장장이 등...이들은 유명 인사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도 아니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지역을 지키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다.

황희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그 이름과 직업만으로도 한 편의 드라마가 떠오른다. 화려하진 않지만 깊이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가장 놓치기 쉬운 그러나 가장 기억해야 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온 이들이 있다. 바로 케이블TV 지역채널이다.

알려진 여행지나 핫한 맛 집을 좇는 여타 콘텐츠들과 달리 케이블TV는 지역의 얼굴과 삶을 조명해왔다. 고유한 이름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애환과 희망을 전하고 잊혀가는 일상의 가치를 비춰왔다. 이는 케이블TV만이 할 수 있는 작지만 진정성 있는 역할이다.

하지만 이들을 소재로한 콘텐츠 제작이 쉽지만은 않다. 제작비는 매년 오르고 투자 대비 수익이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글로벌 OTT의 확산과 미디어 시장의 불균형은 지역 방송사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케이블TV는 ‘지역성’이라는 본질을 놓지 않았다. 이 고비를 넘어설 해법으로 업계가 선택한 방식이 바로 공동제작이다.

공동제작은 말 그대로 방송사들이 협력해 콘텐츠를 공동 기획하고 제작하는 방식이다.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제작비를 분담하며 방송 송출도 함께 진행한다.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각 사의 부담을 줄이는 이 전략은 케이블TV가 위기 속에서 선택한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연대 모델이다.

첫 시도는 2021년 4월 9개 PP사가 함께한 〈취미로 먹고 산다〉였다. 이후 SO들이 본격 참여하면서 공동제작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각기 다른 배경과 역량을 지닌 방송사들이 협력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 사례가 LG헬로비전과 PP 공동제작의 〈눈에 띄는 그녀들〉이다.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2040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프로그램은 시즌7까지 이어지며 지금까지 81명의 여성이 출연했다. 누적 영상 조회수는 1억 뷰를 넘어섰고 100만 뷰 이상 콘텐츠도 30편이 넘는다. 지역채널에서 출발한 콘텐츠가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성과를 거두며 장수 프로그램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트립 인 코리아〉도 주목할 만하다. SK브로드밴드가 중심이 된 이 프로그램은 혼자 떠나는 여행을 주제로 전문 여행 작가들이 함께 여정을 이끄는 형식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방영권, 유통권, 지식재산권(IP)을 공동 소유하고 수익을 분배하는 협력 모델을 도입해 단순한 콘텐츠 제작을 넘어 상생 가능한 구조를 실현했다.

이 같은 흐름은 중소SO로까지 확산되며 콘텐츠의 외연을 더욱 넓히고 있다. 〈나 혼자 여행지도 어디GO〉, 〈맛있는 발굴 서울금광〉, 〈로컬여행, 오! 정해보고〉 등 개성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프로그램들이 전국 각지에서 제작됐다. 이들은 지역의 고유성과 숨은 가치를 발굴하며 로컬 콘텐츠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증명해왔다. 특히 이들의 콘텐츠는 인구 감소와 지역 불균형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존재감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지난 4년간 이렇게 제작된 공동제작 프로그램은 총 25편으로 참여한 방송사만도 191개사에 달한다. 협업을 통해 콘텐츠는 더욱 풍성해졌고 제작에 참여한 방송사들은 각자의 한계를 넘어 실질적인 시너지를 경험하고 있다. 무엇보다 값진 성과는 그 안에 담긴 지역의 이야기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케이블TV는 지금도 지역의 삶을 꺼내고 있다. 작지만 단단한 연대와 상생의 힘으로.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새 정부가 콘텐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