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13일 회의를 열고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수명연장)을 허가했다. 이로써 고리2호기는 2033년 4월까지 재가동된다. 사진은 이날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 2호기 모습. 2025.11.13/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가톨릭교회에는 과거 '악마의 대변인'이라는 역할이 있었다. 성인의 지위를 부여하는 절차에서 결점을 찾아내고, 반문하는 사람이다. 집단의 확신이 강해질수록 그 한 사람의 이견이 더 필요하다. 신뢰는 합창이 아니라 검증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교회는 알고 있었다.
지난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세 차례 심의 끝에 노후 원전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을 의결하는 장면을 보며 이 오래된 제도가 떠올랐다. 이번 심의 과정에서 변호사 출신 진재용 위원만은 끝까지 반대표를 던졌다. 절차적 하자와 평가 부실 가능성을 지적하며 '이 정도면 괜찮다'는 분위기에 제동을 걸었다. 대세가 형성될수록 더 선명해지는 소수 의견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 장면이었다.
'원전 재가동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배경은 분명하다. AI 데이터센터 확충과 엔비디아 GPU 도입 확대 등으로 전력 수요는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폭증하는 부하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확산하고 있고, 기존 원전 재가동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문제는 원안위가 이러한 '속도'를 감당할 체력을 갖추고 있는지다. 계속운전 신청은 줄지 않고 쌓여가지만, 이를 심사할 전문 인력은 늘리기 쉽지 않다. 후쿠시마 이후 국제 규범은 한층 강화됐지만, 그 모든 항목을 샅샅이 들여다볼 시간과 인력은 빠듯하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안전 규제가 산업 속도에 끌려가는 순간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속도를 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속도를 안전하게 따라잡을 체력이 있느냐'다.
그래서 더욱 '악마의 대변인'이 절실하다. 심사 속도를 높이라는 여론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소수 의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원전은 효율만으로 존재하는 기술이 아니다. 국민이 안전하다고 신뢰할 수 있는 검증 절차가 갖춰져야 한다. 그 신뢰의 마지막 보루는 다수가 아닌 소수의 질문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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