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부터 임상까지… '전주기 의과학 AI'로 글로벌 의료 패권 노린다"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11월 23일, 오전 11:17

[이데일리 윤정훈 기자]“분자 단위의 화학물질부터 환자의 임상 기록까지, 의과학의 모든 데이터를 아우르는 ‘전주기 파운데이션 모델’을 통해 한국이 글로벌 의료 AI 패권을 잡을 기반을 만들고자 합니다.”

국내 대표 의료 AI 기업 루닛(328130)의 공동창업자이자 AI 기술 총괄인 유동근 상무는 최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진행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AI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 선정 의미를 이같이 말했다.

유동근 루닛 상무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기존 전문의 수준 AI 뛰어넘는 ‘ 전방위 융합형 AI‘ 지향

루닛 컨소시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추진하는 이번 사업에서 ‘의과학 전주기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 내년 9월까지 루닛은 엘리스그룹을 통해 엔비디아 최신 GPU ‘B200’ 256장을 지원받아 새로운 형태의 의료 AI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유 상무가 말하는 ‘의과학 전주기 파운데이션 모델’은 단순히 엑스레이를 보고 병을 찾는 진단 보조 도구를 넘어선다. 이는 ‘신약 개발(물질 발견)→전임상·임상(효능 검증)→진단 및 처방(환자 적용)’으로 이어지는 의학의 전 과정을 하나의 AI 모델로 연결하는 개념이다.

기존 AI가 특정 질환(암)이나 특정 데이터(영상)에 국한된 ‘전문의’였다면, 이 모델은 화학식부터 최신 의학 논문, 환자의 유전체 정보까지 학습해 신약 후보 물질을 제안하거나 복잡한 임상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전방위 융합형 AI’를 지향한다.

루닛은 이 특화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7개 영역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학습할 계획이다. 구조는 △일반언어 △화합물 △단백질 △오믹스(유전체, 전사체 등) △의약품 △임상 도메인(논문 등) △의료데이터(전자의무기록, 의료영상 등 환자 데이터) 등이다.

유 상무는 “의학 지식의 기초에는 의과학이, 그 아래에는 화학이 연결되어 있다”며 “화합물, 단백질, 오믹스, 의약품, 의학 논문, 전자의무기록, 의료 영상 등의 데이터를 모두 학습시켜 의사가 물어보면 근거를 기반으로 진단과 치료법을 제시하는 AI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루닛은 1단계(전반 5개월)에서는 AI가 이해하기 어려운 화합물, 단백질, 오믹스 등 데이터를 언어 모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후 2단계에서는 임상 지식과 실제 의료 데이터를 통합 학습시켜, 내년 하반기에 실제 병원 현장에서 근거 기반의 진단과 치료법을 제시하는 ‘임상 의사결정 시스템(CDSS)’을 선뵐 예정이다.

◇ 23개 기관 뭉친 ‘메머드급 원팀’… 산·학·연·병 총출동

이번 과제는 방대한 범위만큼이나 참여 기관의 면면도 화려하다. 영상 AI와 사업화에 강점이 있는 루닛을 필두로 국내 최고의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기술력, 도메인 전문성, 그리고 풍부한 임상 데이터를 가진 23개 기관이 ‘원팀’으로 뭉쳤다.

기업은 루닛(총괄·영상), 트릴리온랩스(LLM), 카카오헬스케어·SK바이오팜·아이젠사이언스·스탠다임(데이터·도메인), 리벨리온(NPU·반도체), 디써클(생태계 확산) 등이 8곳이 참여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최윤재·김태균·예종철·김현우·홍승훈 교수팀), 서울대(정유성 교수팀) 6개 교수팀도 함께한다. 이외 실증에 중요한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경희의료원, 고려대 산학협력단(고려대병원), 건양대병원, 이화의대부속 서울병원, 계명대 동산의료원, 양산부산대병원 등 9곳이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유 상무는 “트릴리온랩스가 언어 모델을, SK바이오팜 등이 신약 데이터를, 리벨리온이 국산 반도체 최적화를 맡는 구조”라며 “특히 9개 대형 의료기관이 실증에 참여한다는 것은 개발된 AI가 연구실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의료 현장에서 검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루닛은 이번 과제로 개발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할 방침이다.

유 상무는 “오픈소스 공개는 루닛의 강력한 의지”라며 “모델을 공개해 국내 바이오·제약 스타트업들이 이를 활용하게 되면 전체적인 시장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술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사업화하는 속도가 중요하다”며 “루닛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적 ‘체급’을 한 단계 높이는 경험을 하는 것이며, 그 경험 자체가 가장 큰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 “韓, 범용 LLM은 늦었지만 의료 AI는 승산… 핵심은 데이터 개방”

유 상무는 한국 의료 AI의 핵심 경쟁력으로 ‘의료 디지털화’와 ‘데이터 집중화’를 꼽았다. 그는 “구글의 AI 코사이언티스트나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바이오·헬스케어를 미래 성장축으로 보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범용 LLM 경쟁에서는 쉽지 않지만, 의료·바이오 특화 AI 분야에서는 한국이 충분히 승산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AI 기술 그 자체는 빅테크가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흐름이기 때문에 결국 승부는 ‘데이터’에서 갈릴 것”이라며 “한국은 3차병원에 고품질 데이터가 매우 풍부한 만큼, 병원이 이를 기업에 정당한 대가를 받고 제공할 수 있도록 투명한 데이터 거래 시장과 제도가 마련된다면 글로벌 의료 AI 패권을 노려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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