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은 좋았는데… 아마존, 엔지니어 1800명 내보낸 이유는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11월 23일, 오후 03:51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아마존이 3분기 두 자릿수 매출 성장에도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AI 투자와 조직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빅테크 전반에서 엔지니어 감원이 확산되며 배경에 대한 논쟁이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CNBC에 따르면 아마존은 지난달 1만4000명 넘는 감원을 발표했으며, 뉴욕·캘리포니아·뉴저지·워싱턴주 등 네 개 주에서만 4700개 이상 일자리가 줄었다.

이 중 약 40%가 엔지니어였고, 감원은 클라우드·디바이스·리테일 전반에 걸쳐 진행됐으며 특히 게임·광고·AI 검색·비주얼 쇼핑 등 기술·신사업 부문에서 타격이 컸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 사진=이데일리 DB
아마존, 3분기 매출 13% 증가… AWS 20% 성장 ‘호실적’

아이러니하게도 감원은 실적 부진 때문이 아니다. 아마존의 2025년 3분기 매출은 1802억달러로 전년 대비 13% 증가했고, 북미·국제 모두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다. AWS는 20% 성장하며 다시 속도가 붙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업이익은 FTC 합의금과 감원 비용 등 일회성 지출을 포함해 174억달러였고, 이를 제외하면 200억달러 중반대로 더 높아진다. 순이익과 광고 부문도 모두 개선되며 커머스·클라우드·광고 삼각축이 강화됐다.

실적만 보면 감원의 필요성이 커 보이지 않지만, 경영진은 ‘좋은 실적과 별개로 조직을 더 민첩하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빅테크식 구조조정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돈 때문에 자르는 게 아니다”… 재시 CEO의 ‘문화·속도’론

앤디 재시 아마존 CE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감원의 이유를 “재무 문제가 아니라 문화 문제”라고 강조했다. 팬데믹 이후 급격한 성장으로 인력이 불어나며 조직에 불필요한 계층과 관료주의가 쌓였고, 이로 인해 의사결정 속도와 오너십 문화가 약해졌다는 진단이다.

재시 CEO는 아마존을 “세계 최대 스타트업처럼” 운영하겠다며 더 날씬하고 평평한 조직 구조, 더 빠른 실행을 지속적으로 주문해 왔다.

인사총괄 베스 갈레티도 감원 공지에서 “AI 시대에는 더 적은 계층과 더 큰 책임 구조가 필요하다”며 조직 재편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아마존은 이번 감원이 AI 때문이 아니라 관료주의 축소와 속도 향상을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엔지니어가 직격탄 맞은 이유… “비핵심 사업 정리·AI 도입의 그림자”

엔지니어 감원이 가장 크게 나타난 이유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대부분 개발 인력 중심의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최근 몇 년간 원격의료, 어린이 영상통화 기기, 피트니스 웨어러블, 일부 오프라인 매장 등 수익성이 낮거나 실험적 성격의 사업을 정리해 왔다. 이번 감원에서도 게임 스튜디오, AAA급 MMORPG(대규모 다중 접속 게임)개발, 비주얼 검색·쇼핑팀 등 비핵심·신사업 조직이 대거 축소됐다.

캘리포니아주에 제출된 WARN(Worker Adjustment and Retraining Notification·대규모 감원 사전 통지) 자료를 보면, 샌디에이고와 어바인 게임 스튜디오에서는 게임 디자이너·아티스트·프로듀서 등 개발·콘텐츠 인력이 감원의 상당 비중을 차지했다. 팰로앨토 기반의 비주얼 검색팀에서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애플라이드 사이언티스트, QA 엔지니어가 대거 정리 대상에 포함됐다.

동시에 AI와 자동화 확산이 엔지니어링 업무 구조 자체를 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들이 코드 어시스턴트 도입을 본격화하면서 특히 중간급(SDE II) 엔지니어 역할 일부가 자동화 도구로 대체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아마존 역시 자체 코드 도우미 ‘Kiro’를 출시한 상태다.

사진=픽사베이
빅테크 전반으로 번지는 ‘엔지니어 감원’… 공통된 논리는

아마존의 사례는 빅테크 전반에서 진행 중인 ‘엔지니어 재편’ 흐름을 보여준다. 메타·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도 팬데믹 시기 비대해진 개발 조직을 축소하고, AI·클라우드 같은 전략 부문으로 인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배경은 명확하다. 첫째, 인력이 급증하며 조직이 느려졌다는 진단이다. 계층이 늘수록 의사결정이 지연돼 “스타트업처럼 움직이겠다”는 경영진 메시지가 반복된다.

둘째, AI·자동화가 중간급 엔지니어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기업들은 소수의 고급 AI·플랫폼 인력에 보상을 집중하는 구조로 전환 중이다.

셋째, 메타버스·R&D·게임·디바이스 등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면서 엔지니어 집약 부문이 자연스럽게 감원됐다.

넷째, 빅테크가 막대한 자본을 GPU·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경쟁에 투입하면서 인건비보다 설비투자가 우선순위가 된 점도 작용했다.

다섯째, 광고·커머스·클라우드 등 고성장 부문과 그렇지 않은 사업 간 격차가 커지며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경영진은 공통적으로 “단기 비용절감이 아니라 조직을 리셋하기 위한 전략적 감원”이라고 강조한다. 실적은 좋지만 엔지니어를 줄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이런 재편이 장기적으로 혁신 역량과 조직 문화에 어떤 영향을 남길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AI가 만든 생산성 여유를 ‘줄어든 인력’으로 채울지, ‘새로운 실험’으로 연결할지는 경영진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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