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당국이 누리호 후속기인 차세대 발사체의 설계를 재사용 발사체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했다. 한국도 스페이스X처럼 저렴한 발사 단가의 재사용 로켓을 개발하는 길이 열렸단 의미다.
저렴한 발사 단가는 민간의 위성 발사를 촉진하고, 이는 위성 정보 생산·재가공 등 다운스트림 시장의 활성화로까지 이어진다. 민간 주도 우주개발(뉴스페이스)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2일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날 재정사업평가위원회를 열고 우주청이 요청한 차세대 발사체의 조기 재사용화 변경안의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를 심의·의결했다.
당초 차세대 발사체는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거쳐 일회용(소모성) 발사체로 기획됐다. 2023년부터 2032년까지 10년간 2조 132억 원의 국비를 투입하는 게 원안이었다.
사업을 과기정통부로부터 물려받은 우주청은 재사용 발사체가 아니고선 미래 우주수송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을 거라 내다봤다.올해 5월 행정절차를 통해 사업 변경을 신청한 배경이다.
일례로 스페이스X는재사용 로켓 '팰컨9'을 통해 글로벌 우주수송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이다. 일회용 발사체인 누리호와 비교하면, 팰컨9의 ㎏당 발사 단가는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로켓 1단만 재활용해도 전체 개발비의 약 70%를 회수할 수 있다.
이에 우주청은 2030년대 급격히 증가할 국가 우주개발 수요를 해소하고, 재사용 발사체 경쟁에 대응하고자 설계 변경을 추진한 것이다.
3단 로켓인 누리호와 달리 차세대 발사체는 2단형으로 기획됐다. 우주청은 80t급 메탄 기반 엔진 1종을 개발한 뒤 1단에 9기, 2단에 1기를 장착할 계획이다. 기존 계획은 서로 다른 출력의 등유(케로신)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2종을 개발 후, 1·2단에 각각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는 메탄 엔진이 그을음이 적어 로켓 재사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엔진을 1종으로만 통일하면 개발비를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다.
원래 계획처럼 차세대 발사체는 2032년 예정된 달 착륙선 발사 임무를 맡을 예정이다. 재사용 발사 설계는 적용됐지만, 이 때는 최대 가속도를 얻는 데 초점을 두고 로켓을 일회성(소모성)으로 발사한다. 연료를 남길 여유가 없기 때문에, 감속 착륙을 통한 1단 회수는 시도하지 않는다.
박순영 우주청 재사용발사체프로그램장은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는 약 36만㎞다. 로켓을 통해 달 착륙선에 강한 가속도를 줘서 투포환 던지듯지구 궤도에서 달로 보내야 한다"며 "누리호 스펙으로는 1000㎞까지 밖에 못 보내지만, 1단 추력이 2.4배에 달하는 차세대 발사체는 충분한 힘을 내는 게 가능하다. 1단으로 고도 70~80㎞까지 밀어내고, 이후 2단으로 고도 300㎞까지 보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발사체의 첫 발사는 원안 대비 1년을 미뤄 2031년으로 예정됐다. 재사용 기술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R&D 기간을 갖기로 했다.
2032년엔 2번의 발사를 통해 본격적인 달 착륙 미션에 돌입한다. 달 착륙 검증선을 먼저 발사하고, 이후 실제 달 착륙선을 수송한다.
이를 위한 사업비는 기존 계획보다 2788억 5000만 원 늘은 2조 2921억 원으로 확정됐다. 증액분 대부분은 메탄 추진제 기반 시험설비 구축과 재사용 핵심기술 개발에 활용될 예정이다.
203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비행 레벨에서 로켓 1단의 실제 회수 및 재활용이 시도된다. 감속착륙-1단 회수-재활용 등 기능을 단계적으로 실증한다.
박 프로그램장은 "2033년에는 1단 추진제 약 15%를 남기고 감속 착륙 및 자세제어가 가능한지 실증한다. 2034년엔 해상 바지선으로 1단 회수에 도전한다"며 "2035년엔 2번 이상의 발사를 통해 1단의 회수 및 재투입을 모두 수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청은 새로운 위성 발사 임무를 수주해 테스트 비용을 일정 부분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2032년 달 착륙선 미션이 성공적이라면, 일감 수주에 필요한 이력(헤리티지)도 충분할 거라고 우주청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