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케어 다음은 신약개발?"...AI사업에 힘주는 종근당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12월 25일, 오전 08:11

[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종근당(185750)이 인공지능(AI) 수면분석 솔루션 기업 에이슬립과 손잡고 디지털헬스케어 시장 영향력 확대에 나선다. 이번 협력은 단순한 무호흡수면 측정기기 제품 유통을 넘어 전통 제약사의 만성질환 치료제 포트폴리오와 IT 기술을 결합한 융복합 진료모델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종근당이 별도 장비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작동하는 의료기기를 유통에 나서는 것도 이번이 첫 사례로 꼽힌다. 종근당은 향후에도 AI 기반 디지털헬스케어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계획이다. 종근당은 AI신약개발 분야에서도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근당 충정로 본사에서 종근당 김영주 대표(오른쪽)와 에이슬립 이동헌 대표가 ‘앱노트랙’ 국내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종근당 제공)






◇종근당, 디지털헬스케어에 힘주는 이유는



종근당이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에 적극 투자하는 배경에는 이장한 종근당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 회장은 올해 비전선포식에서 "AI 등 디지털 시스템을 기반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며 "자원과 역량을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연구개발 부문에서 보다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합성신약은 물론 ADC와 같은 항체치료제,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등의 분야에서 종근당만의 플랫폼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기조 아래 종근당은 최근 AI 기반 디지털 제품 도입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2020년에는 스카이랩스와 판권 계약을 통해 반지형 웨어러블 의료기기 '카트원 플러스'를 판매했다. 2023년에는 와이브레인과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을 국내 정신과 병의원에 판매하는 공동판촉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6월에는 엠비트로와 무통 레이저 채혈 혈당측정기 'ORTIV' 국내 유통 협약을 맺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종근당의 AI 사업 드라이브가 판매 품목 확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조 현장에서는 이미 AI·빅데이터·자동화 기반으로 공정 혁신을 추진해 왔다. 종근당 천안 공장은 AI 기술을 품질관리 전반에 적용하고 실시간 데이터 수집·추적을 메타버스 형태의 통합 가상 플랫폼으로 구현해 타정 공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품질을 예측하는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특히 종근당은 내용 고형제 라인을 중심으로 품질 관리 전반에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근당 관계자는 "실제 시험을 하지 않아도 타정 작업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가지고 품질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며 "통상적으로 이런 데이터를 뽑으려면 품질관리(QC) 분야에서 샘플링을 해서 함량 시험을 하고 용출을 돌려 시험을 해야 하지만 AI를 통해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품질 예측이 사전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즉 종근당이 디지털헬스케어에 힘을 주는 배경에는 만성질환 중심 사업구조에서 ‘진단-치료-관리’를 잇는 접점을 넓히려는 영업·사업적 동기와 제조·공정 영역에서 이미 진행 중인 AI 전환을 대외 사업 모델로 확장하려는 전사 전략이 동시에 깔려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종근당 관계자는 "수면무호흡증 환자 동반질환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만성질환 중심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디지털헬스케어 제품과 기존 치료제의 융복합을 통해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 옵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에이슬립 앱노트랙이 미국 CES2025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모습 (사진=에이슬립)




◇ 디지털헬스케어 파트너로 에이슬립 선택



종근당이 여러 디지털헬스케어 기업 중 에이슬립을 파트너로 선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에이슬립의 앱노트랙은 다양한 종류의 진단보조용 AI 소프트웨어 중에서도 법정 비급여 항목 승인을 받고 실질적인 병의원 처방 및 유료검사가 이뤄지는 드문 사례로 여겨진다. 앱노트랙은 지난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등급 의료기기 품목 허가를 획득했다. 앱노트랙은 같은 해 1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법정 비급여 대상으로 승인을 받았다.

앱노트랙이란 별도의 웨어러블 기기나 부착형 센서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수면 중 호흡 음을 측정해 수면무호흡증 위험도를 조기에 선별할 수 있는 디지털 진단보조 의료기기를 말한다. 앱노트랙에 탑재된 AI 모델은 수면 중 숨소리를 활용해 환자의 호흡 패턴을 분석한다.

엡노트랙은 다기관 임상과 600만 건 이상의 실제 수면 사운드, 1만 건 이상의 병원 수면다원검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된 AI 알고리즘을 통해 민감도 87%, 특이도 92%, 음성예측도 97%의 높은 성능을 구현했다.

이는 전문병원에서 각종 장비를 활용해 진행하는 수면다원검사의 94%에 근접하는 진단 정확도이기도 하다. 해당 성능은 SCI급 국제학술지와 세계수면학회 등 수십 편 이상의 국제 학회 발표를 통해 검증됐다.

수면무호흡증과 만성질환의 연관성도 종근당이 에이슬립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수면무호흡증 환자 절반 정도가 고혈압을 동반하고 당뇨병 발생 위험도 높다.

수면 중 반복적인 저산소증이 혈압 상승, 인슐린 저항성 증가, 지질대사 이상을 유발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수면 중 무호흡이 반복되면 만성피로와 수면의 질 저하를 초래할 뿐 아니라 고혈압, 비만, 당뇨, 심뇌혈관질환과 같은 중증 만성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치료제가 함께 필요한 경우가 많다. 종근당은 이 점에 주목해 수면무호흡증 진단을 돕는 디지털헬스케어 제품을 유통하면서 회사가 보유한 만성질환 포트폴리오와 시너지를 낼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실제 종근당의 만성질환 포트폴리오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만성질환 치료제 매출은 3812억원으로 전체 매출에서 24.1%를 차지했다. 올해 3분기에는 누적 2860억원을 기록하며 매출 비중 22.5%를 나타냈다. 종근당은 이처럼 탄탄한 만성질환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디지털헬스케어 제품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포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슬립테크 시장의 성장 잠재력도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면 시장 규모는 2011년 4800억원에서 2021년 약 3조원으로 10년 새 6배 이상 성장했다. 글로벌 수면 시장은 2026년 4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글로벌 수면산업 시장 규모는 2019년 4320억달러(640조원)에서 지난해 5850억달러(866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연평균 성장률은 5.2%에 이른다.

수면무호흡증 진단 시장 역시 잠재력이 크다. 성인 남성의 약 20%가 수면무호흡증을 앓는 것으로 추정될 만큼 흔하지만, 기존 수면다원검사는 번거롭고 가격이 비싸 진단율이 낮았다.

2023년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된 환자는 15만 명으로 전체 추정 환자의 1.5%에 불과하다. 앱노트랙처럼 접근성이 높은 진단기기가 등장하면 미진단 환자들의 발굴이 가능해지고 이는 곧 관련 치료제 시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동헌 에이슬립 대표는 "비만,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 분야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종근당과 협력하게 돼 기대가 크다"며 "이번 계약은 디지털 기술 기반의 수면의료가 일상 진료현장으로 본격 확장되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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