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자체조사 발표'에…소비자단체 “'韓 수사체계 무시, 증거인멸 우려”

IT/과학

이데일리,

2025년 12월 26일, 오후 05:49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싸고 쿠팡이 성탄절(25일) 오후 공개한 ‘자체조사 결과’가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정부의 민관합동조사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기업이 독자적으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한국 수사체계를 무시하는 행위”라며 “증거인멸 우려까지 제기되는 만큼 영업정지 등 최고 수준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정부가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조사하고,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쿠팡이 ‘유출자 특정’ ‘유출 범위 제한’ ‘외부 전송 없음’ 등을 담은 입장을 공개하면서, 사실관계 확정 전 여론전에 나섰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는 양상이다.

소비자단체 “조사·수사 협조 약속하고도 일방 발표…납득 어렵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회장 문미란)는 26일 성명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태 발생 후 한 달 가까이 소비자 사과나 책임 있는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던 쿠팡이 갑자기 전직 직원을 조사했다며 결과를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12개 회원단체와 함께 “정부 조사와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던 쿠팡이 관계 기관과 협의도 없이 조사결과를 공개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단체가 문제 삼은 핵심은 ‘형식’과 ‘절차’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증거 확보, 디지털 포렌식, 피의자 신병 확보가 맞물리는 수사 영역인데, 당사자인 기업이 범죄 혐의자 진술을 근거로 결론을 제시하는 방식은 수사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유출자 특정했다면 수사당국과 공조해 신병 확보부터”

협의회는 쿠팡의 설명 중 “디지털 지문 등 포렌식 증거로 전직 직원을 특정했다”는 대목을 거론하며, “이미 특정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수사당국과 협의해 신병 확보가 이뤄지도록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자체조사로 사건을 정리하는 모양새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조사·수사 대상이 된 기업이 비난 여론을 희석하려고 잠수부를 동원해 노트북을 회수했다는 대목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협의회는 “유출자 신병 확보뿐 아니라 쿠팡 내부 개인정보 유출 책임자에 대한 사법처리에도 수사력이 집중돼야 한다”고 했다.

김범석 의장 청문회 출석 요구…“사과·보상안 직접 제시해야”

협의회는 30일부터 열릴 것으로 보이는 국회 연석 청문회에 “실질적 책임자인 김범석 의장이 출석해 납득 가능한 사과와 보상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로비 등을 통한 수사 무마, 축소, 은폐 시도를 즉각 중지하라”고 주장했다.

제도 개선 요구도 함께 제기됐다. 협의회는 영업정지, 택배사업자 등록취소 등 “현행 법 체계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제재”를 거론하며,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촉구했다. 쿠팡의 ‘락인’ 구조로 인해 이용자들이 불만이 있어도 쉽게 탈퇴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가 강력한 선례를 만들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 “합조단 확인 안 됐다”…경찰도 “수사 혼선” 우려 기류

쿠팡의 발표 직후 정부도 난색을 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입장문을 통해 “민관합동조사단에서 조사 중인 사항을 일방적으로 대외에 알렸다”며 쿠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또한 “민관합동조사단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다”며 발표 내용의 진위를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경찰 수사 라인에서도 혼선 우려가 거론된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쿠팡 측은 피의자 측 접촉 사실을 경찰에 알리지 않았고, 경찰이 피의자 검거를 위해 관련 조치를 취하던 상황에서 별도의 ‘자체 경로’가 개입한 셈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쿠팡이 제출했다는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에 대해 “정작 경찰의 분석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는 점도 논란의 불씨로 남아 있다.

쿠팡 “3000개 계정만 저장, 외부 전송 없어…보상안 별도 발표”

한편 쿠팡은 자체조사 결과로 “유출자가 3300만 고객 계정의 기본 정보에 접근했지만 실제 저장은 약 3000개 계정에 그쳤고, 저장 정보는 언론 보도 후 모두 삭제했으며 제3자 전송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저장된 항목에는 고객명,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일부 주문정보와 공동현관 출입번호 2609개가 포함됐고, 결제정보·로그인 정보·개인통관고유번호 접근은 없었다는 취지다.

또 쿠팡은 유출자가 MacBook Air를 파손해 하천에 투기했다고 진술했으며, 유출자의 안내를 토대로 잠수부를 투입해 해당 기기를 회수했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사건 초기부터 외부 보안업체에 포렌식 조사를 의뢰했고, 현재까지 결과가 유출자 진술과 부합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향후 고객 보상 방안은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 합조단과 경찰 수사에서 사실관계가 어떻게 확정될지는 아직 남아 있다. 쿠팡 발표 내용이 공식 조사 결과와 엇갈릴 경우, 기업의 ‘자체 결론 발표’가 오히려 혼선을 키웠다는 비판이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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