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셔츠? 이젠 안입어"…알다가도 모를 개발자들의 세계[툰터뷰]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1월 18일, 오전 09:11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개발자들은 왜 그렇게 체크무늬 셔츠를 좋아하나요?” “……”

한때 IT·게임회사들이 많은 경기도 판교에선 체크무늬 셔츠 무리를 흔히 볼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배회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개발자였다. 본인들도 이를 부인하진 않았는데, 왜 꼭 체크무늬 셔츠여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당황해 하며 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지=네이버웹툰)
개발자들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개발자들의 세계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웹툰이 등장했다. 네이버웹툰 ‘경경수의 개발만화’가 바로 그 주인공. ‘바른생활’에 등장할 법한 인물 캐릭터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예상과 다른 말을 뱉어내는 ‘반전매력’이 바로 이 웹툰의 특징이다.

작가는 실제 개발자로 ‘백엔드 개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백엔드 개발자란 이용자들에게 직접 보이지 않는 웹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의 뒷단을 만드는 역할로, 서버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전반을 설계하고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을 하는 직군이다. 작가는 ‘백엔드 개발자의 장점은 일단 돌아만 가면 어떤 이용자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안돌아가면 모든 이용자들이 곧바로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경수의 개발만화를 연재 중인 경경수 작가를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말 본인이 개발자 맞나. 웹툰을 그리게 된 계기는.

△맞다. 본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먼저 만화를 올리고 있었지만 반응이 별로 없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웃긴 컷 하나를 그려서 올렸다. 대충 그린 그림이었는데 갑자기 팔로우가 늘어서 ‘아 난 웃긴 걸 그려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 일러스트를 모두 삭제하고 계정 이름도 만화 계정으로 바꾼 뒤 만화랑 컷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로 조금씩 반응이 생기더니 지금은 많은 분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내 만화를 보고 있다.

마침 그 시기에 네이버웹툰 베스트 도전에서 연재 중이었는데 네이버웹툰에서 연락이 왔다. 돌아보면 참 잘한 선택인 것 같다.

-1화에서 개발자들은 왜 체크셔츠를 입는지가 등장하는데 정말 궁금했던 내용이다. 그런데 이제는 안입는다니 정말인가. 본인의 패션 코드는.

△확실히 처음 입사했을 때랑 비교하면 요즘은 덜 입는 것 같다. 체크셔츠보다는 몇년 전 이직한 회사에서 받은 낡은 회색 후드티 같은 걸 많이 입는다. 아래 그림 그대로다.

(이미지=네이버웹툰)
아마도 ‘체크셔츠 = 개발자’라는 공식이 너무 굳어지다 보니 그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점점 안 입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내 패션은 평소 만화에 나오는 모습이랑 거의 같다. 낡은 후드에 낡은 바지 차림이 기본인데 가끔 체크셔츠를 입어볼까 하다가 왠지 망설여져서 결국 다시 후드를 집게 되더라.

-판교에 가보면 개발자들은 체크셔츠 외에도 슬리퍼를 신고 그대로 외출하는 경우가 많던데.

△사실 나는 개발자들만 유난히 외출할 때도 슬리퍼를 그대로 신고 나간다는 걸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만약 개발자들만 유독 슬리퍼를 신고 나가는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다른 생각을 하다보니 슬리퍼를 신은 채 사무실을 나서고 1층에 도착해서야 ‘아 슬리퍼네’하고 깨닫는 것 같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어쨌든 걸을 수는 있으니까’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기는거다.

마치 프로젝트 배포 직전에 사소한 버그 하나를 발견했지만 ‘어쨌든 돌아는 가니까’라고 나중에 고치기로 한 채 그대로 배포해버리는 상황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다른 직군은 슬리퍼 신고 그냥 외출하는 경우가 없는지 궁금하다.

-개발자라면 기본으로 게임을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발자들이 특히 많이 가진 취미나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도 있나.

△꼭 개발자라고 해서 게임을 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만 해도 게임을 좋아하긴 하지만 잘 하지는 못한다. 다만 게임을 아주 잘하진 않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비율은 다른 직군에 비해 높은 편인 것 같다. 특히 인디 게임을 좋아하는 개발자들이 정말 많은데 이게 가장 흔한 취미일 듯 하다.

음악 취향은 딱히 공통된 장르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유독 자주 겹치는 건 영화 취향이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공상과학(SF)물인데 유명한 SF 영화가 개봉한 다음 주가 되면 점심시간마다 다들 그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공대생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개발자들은 평소 타인들과 대화할 때도 코딩으로 문제를 자연스레 해결하는 상상을 하나.

△코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상상을 하기보다는 대화나 상황을 입력과 출력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누가 고민을 털어놓을 땐 바로 해결하려 들지 말고, 먼저 괜찮냐고 물어봐라” 라는 핀잔을 한 번 들으면, 머릿속에 ‘누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 괜찮아?라고 말한다’라는 규칙이 생긴다. 그래서 이후에 누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일단 “괜찮아?” 라고 말하고 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다.

-개발자들은 정말 그렇게 늘 바쁜가.

△그건 회사마다 사람마다 정말 다 다른 것 같다.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하며 바쁘게 일하시는 분도 있고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으로 워라밸 최상의 삶을 사는 분들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주변 개발자들은 하나같이 야근이 많다.

-일반인들이 개발자들에 대해 가진 편견 중 바로잡고 싶은게 있다면.

△개발자는 마르고 힘없는 약골일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요즘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만화에서도 그렸었지만 요새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튼튼해진 개발자가 많다. 또 하나는 개발자는 전부 오타쿠(이하 마니아)일 거라는 편견인데 전부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정도와 분야의 차이만 있을 뿐 뭔가에 깊이 빠져들어 끝까지 파고드는 마니아적인 성향은 다들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일 자체가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다른 직업을 가질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

△만약 내가 다른 일을 한다면 마니아스러움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다.

-개발자가 되고싶은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은.

△개발자는 코딩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코딩은 수단에 가깝고 실제로는 문제를 어떻게 풀지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리고 생각보다 공부를 오래, 많이 하게 된다. 어제 배운 것이 금세 예전 기술이 되기도 하고 잠깐 한눈 파는 사이 새로운 기술들이 잔뜩 등장해 있다. 요즘은 AI까지 더해져서 그 속도가 더 빨라진 느낌이다.

다행이라면 AI를 활용해 우리도 새로운 지식을 조금 더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점 정도다. 어쨌든 공부를 계속하게 되는 직업인 것 같다.

-앞으로 에피소드는 얼마나 남아있나. 기대할 만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번 연재는 이제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계속 이어서 그리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오래 그리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새로운 환경과 고민들을 더 겪고 이것저것 더 배우면서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모아 돌아오고 싶다.

기대해도 좋을 에피소드로는 AI 시대를 맞은 개발자의 마음가짐을 다룬 이야기를 꼽고 싶다. 요즘 AI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직군 중 하나가 개발자이다 보니, 관련해서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을 정말 많이 하게 되더라. 매일매일 발전하는 AI를 보며 멋지고 짜릿하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한편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다.

그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그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들을 에피소드에 담았다. 특히 마음에 드는 컷 하나를 슬쩍 공개한다. 어떤 의미의 그림인지, 무엇을 패러디한 장면인지는 해당 에피소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경경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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