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때문에 헛발질 안 돼…'온플법' 도입 시 한국 GDP 12.6% 증발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1월 29일, 오후 04:16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정부와 여당이 논의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거래법(온플법)’이 한미 통상 협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이나 배달의민족 수수료 갈등 등 플랫폼 관련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제도 개선을 명분으로 곧바로 규제 신설에 나서는 ‘마녀사냥식’ 대응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이 29일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규제와 경제-온라인플랫폼법 도입 시의 경제효과 및 전망’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한국산업연합포럼)
“재발 방지 넘어선 규제 강화…소상공인 보호 해법 아냐”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은 29일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한국산업연합포럼(KIAF) 토론회에서 “정부가 플랫폼 보안 사고 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재발 방지에 그치지 않고 법적 규제 강화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기업의 실수를 계기로 ‘거대 플랫폼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규제는 경제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 실장은 “쿠팡을 통해 창출된 직·간접 일자리는 최소 30만명 규모이고, 새벽 배송 시스템은 수많은 중소상공인의 물품을 유통하는 구조”라며 “플랫폼 간 무한 경쟁은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고 후생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온플법이 국내 공정거래 문제를 넘어 국제적인 통상 이슈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미국 빅테크를 타깃으로 하는 규제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통상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자국 기업을 역차별하는 규제는 국가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행위”라고 우려했다.

김규옥 한국M&A협회 이사회 의장 역시 최근 쿠팡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식을 언급하며 “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면 사안의 시시비비를 가려야지, 이를 계기로 노동법이나 세금 실태까지 엮어 공격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방식의 조사가 미국계 기업인 쿠팡에 집중될 경우, 자국 기업에 대한 의도적 차별이라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온플법 도입의 경제효과 분석 발표를 맡은 유병준 서울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정치권의 생리대 가격 언급을 예로 들며 규제의 역설을 경고했다. 유 교수는 “생리대 같은 일반 제품은 국가별 가격 비교를 엄격히 하면서도, 플랫폼 수수료에 대해서는 왜 글로벌 기준과 비교하지 않느냐”며 “국내 배달 플랫폼의 중개 수수료율은 10% 내외로, 20~30%에 달하는 미국 등 글로벌 플랫폼의 절반 이하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이 겪는 어려움의 본질은 수수료가 아니라 과당 경쟁과 전반적인 비용 상승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있는데 정치권이 이를 플랫폼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며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과소 성장을 고착화시켜 기업 가치를 반토막 내는 등 결국 플랫폼 기업에 투자한 수십만 국민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 무기로 자국 군대 쏘는 격”.

전문가들은 온플법이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참고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강력한 토종 플랫폼을 보유한 우리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기조발제에 나선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한국은 검색(네이버)과 메신저(카카오톡) 영역에서 강력한 로컬 플랫폼을 보유해 국가별 플랫폼 자립도 지수에서 4점을 기록하며 유럽(0점)이나 일본(2점) 대비 압도적인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며 “글로벌 플랫폼 의존도가 높은 EU와 차별화 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유럽은 내수 시장 보호와 규제 대응을 위해 DMA를 도입했지만, 한국은 콘텐츠·AI 등의 전략적 거점으로서 일률적인 규제는 우리 기업의 투자 철회나 규모 축소로 이어질 수 있어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 먹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 회장은 제도 전면 시행 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2.6% 감소하는 등 10년 기준 최대 4690억달러(약 67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며 유럽 DMA가 아닌 미국처럼 경쟁법에 의한 사후규제 방식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9일 서울 서초동 자동차회관에서 열린 ‘규제와 경제-온라인플랫폼법 도입 시의 경제효과 및 전망’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산업연합포럼)
과잉 규제 대신 혁신이 시장 재편

데이비드 오 덴톤스리 변호사도 “유럽은 자국 빅테크가 없어 미국 기업을 견제하려 DMA를 만들었지만,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 무신사 등 경쟁력 있는 자국 플랫폼이 많다”며 “유럽식 규제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남의 나라 전쟁 무기를 가져와 자국 군대를 쏘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규제의 초점을 ‘특정 행위의 금지’에 맞추기보다 시장이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스스로 재편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웹브라우저 독점 이슈가 해소된 것은 규제의 힘이 아니라 구글 크롬의 등장과 모바일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파괴적 혁신이 시장을 재편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승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디지털경제연구원 리더는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에 있으나, 챗GPT 등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기존 시장 획정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며 “시장 분석에 기반한 규제는 기술 앞에서 무력화되기에 혁신과 발전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온플법은 ‘과잉 입법’으로 기업 혁신의 족쇄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정 회장은 “의원과 공무원들이 사건 보도 시 무조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과 규제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출신의 배진철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고문도 “이미 갑을관계 관련 법안이 5개나 있음에도 온플법을 만드는 것은 부처 영향력 확대와 승진을 위한 실적주의 규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과잉 입법의 배경을 강력히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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