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잔혹사② 확정안 된 수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유죄’로 작동할 때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2월 04일, 오후 05:16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카카오페이의 미국 시버트 파이낸셜 인수 무산은 흔한 해외 M&A 실패 사례가 아니다. 이 사건은 한국의 사법·행정 시스템이 글로벌 자본시장과 얼마나 심각한 비동조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 구조적 사고(事故)에 가깝다. 문제는 한 기업의 판단 오류가 아니라, 확정되지 않은 수사가 어떻게 글로벌 시장에서 ‘사실상의 유죄’로 선반영되는가라는 제도적 메커니즘이다.

박용후/관점디자이너
2023년 추진된 종합증권회사 시버트 인수는 나스닥 상장 금융사를 확보해 한국 핀테크 산업이 미국 본토로 진입하려는 전략적 시도였다. 그러나 거래가 진행되던 시점, 카카오 그룹 전반을 둘러싼 수사 국면은 급격히 심화됐다. 그 결과 인수는 무산됐고, 카카오페이는 사후 분쟁 끝에 약 65억 원 규모의 합의금을 수령하는 선에서 사건은 종결됐다. 법적으로 보면 손해를 일부 보전받은 셈이지만, 산업적·전략적 관점에서 이는 사실상 완패에 가깝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M&A는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투자자는 판결문이 아니라 리스크의 지속 가능성을 본다. 특히 금융·플랫폼 기업처럼 신뢰가 핵심 자산인 산업에서는, 수사 개시와 압수수색, 경영진 소환 자체가 이미 거래의 전제조건을 붕괴시키는 사건으로 인식된다. 이 점을 외면한 채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논리는 국내 여론에는 통할지 몰라도, 글로벌 시장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한다.

시버트 측이 언급한 ‘중대한 부정적 영향(Material Adverse Effect)’ 역시 이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는 특정 혐의의 진실 여부가 아니라, 한국 사법 리스크가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었다. 실제로 미국 자본시장에서 MAE는 단일 사건보다, 불확실성의 구조적 지속성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 점에서 시버트 인수 무산은 감정적 판단이 아니라, 냉정한 시장 논리의 결과였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2025년 10월 21일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카카오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의 출발점에는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제기된 시세조종 혐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사법 절차를 통해 드러난 현실은, 초기 수사 단계에서 형성된 ‘중대 범죄’ 프레임과 상당한 괴리를 보였다. 법원은 경영권 확보 과정에서의 주식 매수 행위를 두고, 시장 질서를 교란하려는 고의와 범죄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구속 수사의 필요성 역시 강하게 다투어졌고, 검찰의 논리는 여러 지점에서 제동이 걸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죄냐 유죄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문제는 사법적 판단이 축적되기 전에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결론이 내려졌다는 사실이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형성된 범죄 프레임은, 이후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되돌릴 수 없는 신뢰 손실로 전환됐다. 이는 정의의 문제이기 이전에, 국가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이 현상은 카카오페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카카오,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그룹 전반에 걸쳐 이어진 동시다발적 조사 역시, 상당수는 중대한 유죄 확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외 시장에 남은 인상은 단순했다. “한국의 플랫폼 기업은 언제든 사법 리스크에 의해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

이 인식이야말로 가장 값비싼 비용이다. 이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에 부과되는 ‘제도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전이된다. 해외 투자자는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고, 글로벌 파트너는 더 많은 안전장치를 요구하며, 전략적 인수합병은 첫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결국 그 비용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투자자, 그리고 산업 생태계 전체가 분담하게 된다.

사법권의 행사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아니다. 문제는 사법권이 글로벌 시장에서 어떤 파급 효과를 갖는지에 대한 제도적 감각의 부재다. 수사의 속도, 공개 방식, 메시지 관리, 확정 이전 단계에서의 절제는 이제 법률 문제가 아니라 경제 정책의 일부다.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기존의 ‘국내용 정의 프레임’만을 고수한다면, 그 대가는 반복적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카카오 사례는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정의를 집행하면서 동시에 국가 경쟁력을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정의의 이름으로 미래 산업의 시간을 소진시키는 구조를 방치하고 있는가.

확정되지 않은 혐의가 글로벌 시장에서 즉시 ‘유죄’로 환산되는 시대다. 제도가 그 현실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잃어버리는 것은 개별 기업의 3년이 아니라 국가 산업의 다음 10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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