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디지털 만화 시장에서 독보적 1위 사업자인 픽코마는 이 불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픽코마는 게임을 포함한 일본 앱 매출 1위(2022년~2025년 연속·센서타워 기준)를 기록하며, 사업 경쟁력만 놓고 보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환영받을 조건을 이미 갖췄다. 그럼에도 상장은 수년째 ‘시기 미정’ 상태다. 철회도 추진도 아닌 정지. 이 어정쩡한 상태가 길어질수록, 질문은 기업이 아니라 시장을 향한다. 왜 이런 기업의 IPO 시계는 멈춰 서 있는가.
박용후/관점디자이너
글로벌 시장 창구가 닫힌 시간
첫째, 글로벌 시장 요인이다. 2022년 이후 금리 인상과 성장주 조정은 IPO 시장의 창구를 좁혔다. 이 환경에서는 “상장을 해도 기대한 밸류에이션을 받기 어렵다”는 판단이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둘째, 구조 요인이다. 모회사와의 지배구조, 연결 실적, 내부거래에 대한 시장의 시선, 상장 시장 선택(일본·한국·미국 등)에 따라 달라지는 공시·회계·규제 부담은 딜 자체를 복잡하게 만든다. 실적이 좋아도 구조가 복잡하면 거래 리스크는 커지고, 그만큼 의사결정은 늦어진다.
셋째, 정책·사법·여론이 결합된 ‘해석 리스크’다. 기업의 펀더멘털과 별개로, 모기업이 정책 논쟁의 중심에 놓이거나 수사·재판 이슈와 맞물릴 때 IPO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의미가 붙는 거래’로 변한다. 누구도 “상장을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아도, 관련 주체들은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심사기관은 절차적 엄격함을 강화하고, 주관사는 평판 리스크를 계산하며, 기관투자자는 ‘설명 가능한 투자’라는 기준을 더 엄격히 적용한다. 결과적으로 거래는 위축된다. 명령이 아니라 분위기로 작동하는 리스크다.
이 글이 주목하는 지점은 셋째 요인이 앞의 두 요인을 압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시장 요인과 구조 요인은 다른 기업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그럼에도 어떤 기업은 결국 상장하고, 어떤 기업은 멈춘다. 그 차이를 설명하려면 “같은 환경에서도 추가로 붙는 위험 프리미엄”을 봐야 한다. 그 프리미엄이 바로 해석 리스크다.
카카오픽코마
픽코마 사례는 단순히 카카오의 이슈로 끝나지 않는다. 실적과 경쟁력이 충분해도, 모기업이 정책·사법 리스크의 중심에 놓이는 순간 그 자회사의 IPO는 ‘기업 리스크’가 아니라 ‘국가 시장 리스크’의 일부로 읽힌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 시장 리스크는 “한국 기업은 안 된다” 같은 단순 평가가 아니다. 기업 가치 외의 변수가 거래 성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 즉 규칙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계산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카카오픽코마가 디지털 만화·소설 플랫폼 최초로 오리지널 굿즈 전문 쿠지(뽑기) 서비스 ‘픽코마쿠지(ピッコマくじ)’를 지난 12월 3일 선보였다.
2026년 현재, 일부 환경 변화는 감지된다. 김범수 창업자의 사법 리스크는 일부 사건에서 1심 무죄로 정리됐고, 플랫폼 규제 역시 자율 규제를 병행하는 방향으로 톤이 조정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은 단기적 변화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정책의 기억은 길고, 위축 효과는 누적된다. 한 번 ‘정치적 기업’으로 분류된 자산이 다시 ‘중립적 투자 대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구조가 반복될 때의 파장이다. 기업들은 점점 더 상장을 미루거나,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선택하게 된다. 국내 자본시장은 성장 기업을 잃고, 남는 것은 규제 친화적이지만 역동성 없는 자산들이다. 이는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자본시장의 경쟁력 문제다.
픽코마의 멈춰 선 IPO 시계는 한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자, 동시에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리스크를 비추는 거울이다. 실적이 좋아도 상장이 정치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시장이라면, 그 비용은 결국 기업을 넘어 시장 전체와 국가가 치르게 된다. 자본은 숫자에 투자하지만, 그 숫자를 읽는 규칙에도 투자한다. 그리고 지금, 그 표심이 어디를 향하는지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