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과도기 이사회 인사권 행사 정관 반영 추진하다 제동
김용헌 KT 이사회 의장
논란은 이후 더 커졌다. 김용헌 의장이 “최양희 이사에게 위임을 받았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최 이사의 한 표를 더해 안건을 5대4로 처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측은 이사회 규정상 출석과 의결 절차가 명확해야 하고, 위임을 인정할 근거 규정이나 관련 서류도 없다며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의장이 최 이사와의 전화 연결을 시도하며 전화 출석 또는 전화 의사표시 가능성까지 검토했지만, 반대 측이 “이 과정을 공개하고 주주총회에서도 문제 삼겠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약 30분간 정회가 이뤄졌고, 결국 해당 안건은 4대4 부결로 정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반복되는 월권 논란…국민연금도 움직였다
이번 충돌은 단순한 표 대결을 넘어, 이사회가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으로도 번지고 있다. 찬성 측은 과도기 이사회 인사권은 대표이사(CEO)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경영 공백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KT 이사회는 이미 지난해 상법상 CEO에게 보장된 인사권을 침해했다는 월권 논란에 휘말린 전력이 있다. 이번 시도 역시 같은 논란을 재점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KT 이사회는 지난해 이사회 규정 제8조를 개정해 CEO가 부문장급 임원을 임명할 때 이사회의 사전 의결을 받도록 했다. 당시 찬성한 이사 역시 김용헌·이승훈·곽우영·윤종수·최양희·조승아 이사였다. 이 같은 규정 개정을 두고 이사회 월권 우려가 커지자 국민연금은 최근 KT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고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선 상태다.
KT 안팎에서는 CEO 공백기 문제를 이유로 이사회가 직접 인사권을 갖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KT 관계자는 “CEO 공백기 임직원 인사 공백 문제를 해소하려면 임시 주주총회를 앞당겨 차기 CEO를 조기에 선임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이사회가 인사권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컴플라이언스위 무시에 회계 이사 번복까지
김용헌 의장이 초래한 혼란은 ‘전화 위임’ 논란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월 9일 KT 전략·재무를 총괄하는 경영기획총괄 자리를 달라는 인사 청탁 의혹이 제기된 이승훈 사외이사와 관련해, 제3의 독립기관에 의뢰해 이사회 차원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사내 독립적인 감사기구인 컴플라이언스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특정 사외이사 개인 비리 의혹을 조사하는 데 외부 법무법인 두 곳을 투입해 약 2억원의 회사 자금이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배임 소지까지 거론됐다. 결국 김 의장은 법무법인 지평과 율촌에 맡기려던 외부 조사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 분야 사외이사 선임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김 의장은 당초 회계 분야 사외이사를 공석으로 둔 채 내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선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 상법상 감사위원회 내 재무·회계 전문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커졌다. 그러자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5일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열어 회계 분야 사외이사 후보 1명을 추가 확정했다. 서진석 전 EY한영 대표를 정기주총 후보로 뒤늦게 올린 것이다.
김 의장 체제의 KT 이사회는 외부 조사 문제에서는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중단했고, 회계 이사 문제에서는 “공백도 가능하다”던 판단을 내놨다가 시장의 우려가 커지자 뒤늦게 후보를 추가 추천하는 방식으로 수습에 나선 셈이다. 안일하게 출발했다가 다급하게 봉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최장수 사외이사 체제…이름만 ‘독립’이면 되나
KT 내 최장수 사외이사인 김용헌 의장을 둘러싼 리더십 논란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층 커지고 있다. 김 의장은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2년 3월 KT 사외이사로 합류한 법조인 출신으로, 구현모·윤경림 후보 선임 과정과 김영섭 대표 선임 과정에 모두 참여했다. 이후 2025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됐고, 지난해 11월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의장 선임 당시에는 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라는 이력을 바탕으로 합리적 운영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전화 위임 논란, 섣부른 외부 조사 의뢰, 회계 이사 선임 번복 등 잇단 논란이 겹치면서 리더십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됐다.
KT 이사회는 이번 정관 개정 과정에서 기존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기도 했다. 개정된 상법 취지를 반영했다는 설명이지만, 이름만 바꾼다고 주주 중심 경영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KT 관계자는 “한번 사외이사로 들어오면 최초 추천인이 누구인지, 어떤 경로로 추천됐는지 아무도 모르고 셀프 연임을 해도 견제할 장치가 없다”며 “KT 사외 이사들이 이익 카르텔로 변질되지 않도록 사외이사 추천과 선임 구조부터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