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파마·대형사만 웃는다”...바이오시밀러 승인 간소화, 시장 재편 신호탄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4월 17일, 오전 08:31

[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유럽과 미국, 한국 규제당국이 잇따라 바이오시밀러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구조 재편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대개 개발 비용과 기간이 줄어드는 호재로 평가된다. 하지만 동시에 약가 인하 압력과 경쟁 심화로 이어지며 규모의 경제를 갖춘 대형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캐시카우(현금창출원) 확보를 위해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뛰어든 중견 제약사와 바이오벤처에는 경고등이 켜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셀트리온 연구원이 바이오시밀러 제형 개발을 하고 있다. (사진=셀트리온)


◇약가 인하 압력 본격화…“결국 가격 싸움”

9일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최근 유럽의약품청(EMA), 미국 식품의약국(FDA),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잇따라 바이오시밀러 개발·승인 요건 완화에 나섰다. FDA는 2027년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임상시험계획(IND) 승인 간소화와 바이오시밀러 승인 절차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비교임상시험 요건을 사실상 축소하거나 불필요한 경우 생략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대체가능성(interchangeability) 개념 역시 별도 구분을 없애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

FDA는 일부 임상 1상 시험에 대해 새로운 대체시험법(NAMS)을 활용한 신속 IND 경로를 도입해 초기 개발 부담도 낮출 계획이다. 유럽 역시 임상 데이터 요구 수준을 낮추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한국도 임상 1상으로 동등성과 안전성이 입증되면 임상 3상 생략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대외협력본부장은 “지난 10여년간 바이오시밀러의 효능·안전성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되면서 고비용의 임상 3상 없이 분석적 평가만으로 입증 가능하다는 과학적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동시에 환자 접근성 확대와 의료 재정 부담 완화라는 정책적 목적도 크다”고 설명했다.

승인 절차 간소화의 가장 큰 효과는 개발 비용 절감이다.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한 품목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에는 통상 1000억~1500억원이 투입되는데 임상 3상이 축소되거나 면제될 경우 비용이 절반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승인 간소화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라 약가 인하 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개발 비용이 줄어든 만큼 더 낮은 가격을 요구받는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 바이오시밀러 개발 시 시장 진입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경쟁 강도는 오히려 높아질 전망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인도 기업들이 미국·유럽 시장에 본격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며 “복제약(제네릭) 시장처럼 글로벌 경쟁이 급격히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 본부장 역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약가 협상을 강화했고, 유럽도 강력한 약가 억제 정책을 펴고 있다”며 “승인 간소화는 공급자를 늘려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진단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우비즈'.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최초로 허가받은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의 바이오시밀러다. 특허 만료 이전인 2021년 기준 루센티스의 글로벌 연간 매출액은 34억달러(약 5조원)에 달했다. (사진=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삼성바이오에피스 유리…중소사는 ‘출구 전략’ 필요

바이오시밀러가 최근 몇 년간 중견 제약사와 바이오벤처들이 앞다퉈 진출한 대표 사업 영역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제도 변화는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2026~2030년 사이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 특허 만료가 이어지면서 유망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았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약 200개 바이오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연 매출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 이상 블록버스터 의약품만 약 70개에 달한다. 신약 대비 개발 리스크는 낮고 시장성이 이미 검증돼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종근당(185750), 동아에스티(170900)(동아ST) 등 전통 제약사들이 2010년 전후로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진출했다. 바이오벤처 가운데서는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950210), 알테오젠(196170)의 자회사 알토스바이오로직스 등이 바이오시밀러를 핵심 사업으로 키워왔다.

하지만 승인 간소화로 양극화가 심화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셀트리온(068270), 삼성바이오에피스 정도의 기업이 대규모 생산시설과 글로벌 판매망을 바탕으로 약가 인하 국면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바이오시밀러를 캐시카우로 여기고 진입한 제약사와 바이오벤처는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황 본부장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점차 규모의 경제와 수직계열화를 이룬 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중소 기업은 틈새시장 공략이나 바이오베터 개발, 위탁개발생산(CDMO) 협력 등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실제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는 바이오시밀러 사업 비중을 축소하거나 전략 재조정을 검토하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단순 개발 중심 모델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 바이오벤처의 임원은 “앞으로는 바이오시밀러 개발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지고, 바이오시밀러를 유통하던 대형사들이 개발·생산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전방통합이 늘어날 것”이라며 “우리 회사 역시 이미 개발이 완료된 프로젝트 위주로 사업을 이어가고 신규 개발은 제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