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 연기금 코스닥 투자 대폭 확대...지분 늘린 K바이오 기업은? [코스닥 벨류업 上]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4월 22일, 오전 08:11

[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투자업계의 큰 손 연기금이 코스닥시장 투자를 확대한다. 정부가 1400조원에 달하는 67개 연기금의 운용 평가 기준(벤치마크)에 코스닥 지수를 5% 반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를 중장기적으로 10조~20조원까지 늘리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확정됐다. 이에 따라 연기금은 투자 포트폴리오 재편도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해외 자산을 덜어내고 국내 증시로 자금을 돌리는 이른바 '큰손의 귀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연기금의 시선은 코스닥시장의 주축인 제약·바이오·헬스케어 섹터로 향하고 있다. 다만 연기금은 과거처럼 막연한 신약 개발 기대감에 대한 투자가 아닌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차세대 신약 플랫폼 등 뚜렷한 성장 동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유망 기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깐깐한 옥석 가리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현황 (자료=국민연금)


◇연기금, 해외 투자→국내 기업 투자 확대…비중 살펴보니

연기금의 대표격인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가 17년 만에 구조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1월 연말 목표 투자 포트폴리오를 수정해 해외주식 비중을 기존 38.9%에서 37.2%로 1.7%포인트(p) 낮추고 국내주식 비중을 14.4%에서 14.9%로 0.5%p 높이기로 의결했다. 국내 채권 비중 역시 23.7%에서 24.9%로 상향 조정했다.

이러한 결정의 이면에는 두 가지 강력한 동인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환율 부담이 꼽힌다. 지난 1월 말 기준 1540조 4000억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적립금 중 해외 투자 비중이 44%에 육박하면서 지속적인 달러 강세와 외환 조달에 따른 시장 압박이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둘째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향한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꼽힌다. 정부는 기금 평가에서 해외 투자 항목을 삭제하고 벤처 투자 항목의 가점을 기존 1점에서 2점으로 2배 높였다. 자본시장으로 돈이 구조적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코스닥 시장으로의 수급 유도를 위한 벤치마크 구조 개편은 파급력이 상당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연기금의 기준수익률은 코스피 지수로만 구성돼 있어 코스닥은 사실상 기관의 투자 사각지대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금 평가 기준수익률 산출 시 ‘코스피 95% + 코스닥150 5%’를 혼합 반영하게 된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통해 현재 5조~6조원 수준인 코스닥 투자 규모가 10조~20조원까지 2~3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투자 확대와 발맞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보폭도 넓어진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3월 정기 주주총회부터 의결권 행사 사전 공개 범위를 기존 ‘지분율 10% 이상’에서 ‘지분율 5% 이상 또는 보유비중 1% 이상’으로 대폭 확대했다. 코스닥 혁신 기업들에 자금을 수혈하는 동시에 적극적인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밸류업을 강제하겠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 국내 투자 규모 추이 (자료=국민연금)


◇코스닥 기업도 연기금 지분 확대…지분 늘린 기업은

연기금이 코스닥의 모든 바이오 종목을 사들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구조적 성장 동력, 검증된 플랫폼 기술, 그리고 수익화 가능성이 숫자로 확인된 기업을 중심으로 철저한 선별적 매수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공시를 통해 확인된 국민연금의 지분 확대 현황은 이러한 투자 철학을 명확히 보여준다.

국민연금은 최근 의료AI 솔루션 기업 쓰리빌리언(394800)(3billion)의 보유 지분을 늘렸다. 지난 1일 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쓰리빌리언 주식 2만5000주를 추가 매수하며 지분율을 4.10%에서 5.06%로 끌어올렸다. 지분율이 5%를 넘어서며 주요 주주 명단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쓰리빌리언은 환자의 약 500만개 유전변이를 5분 이내에 99.4%의 정확도로 해석하는 독자적인 AI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연기금은 쓰리빌리언이 단순 진단을 넘어 희귀질환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기술 이전하는 AI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통 제약사에서 바이오 신약 명가로 거듭난 SK바이오팜(326030) 역시 연기금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은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의 탄탄한 미국 현지 매출 성장과 표적단백질분해(TPD), 방사성의약품(RPT) 등 차세대 모달리티 연구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해 지분율을 6.02%에서 7.03%로 확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상업화에 성공해 흑자를 내고 있는 검증된 기업이라는 점이 투자 포인트로 꼽힌다.

자가면역 및 안과질환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한올바이오파마(009420)는 이달 들어 국민연금이 5% 미만이었던 지분률을 단숨에 10.05%로 대폭 끌어올리며 전략적 주주로 올라선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안구건조증 치료제 탄레비맙의 글로벌 임상 진전 등 파이프라인의 잠재력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밖에도 헬스케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과 배당 여력을 갖춘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9.46%→10.47%)와 글로벌 라이선스 아웃 성과를 꾸준히 내는 한미약품(128940)(10.61%→11.87%) 등 전통 제약·지주사 역시 국민연금의 지분 확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연기금의 매수가 맹목적인 장기 보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항체-약물 접합체(ADC) 분야의 글로벌 강자인 리가켐바이오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국민연금은 당초 리가켐바이오(141080)의 글로벌 기술이전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지분율을 4.05%에서 최고 6.16%까지 확대했으나, 2026년 4월 파트너사의 기술이전 계약 해지 소식이 전해지자 신속하게 지분을 4.10%로 축소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성장성과 검증’이라는 전제가 흔들리면 언제든 포지션을 바꿀 수 있다는 냉정한 ‘옥석 가리기’의 실례다.

결과적으로 연기금이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연기금은 단순히 임상 성공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움직이는 기업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독보적 플랫폼 기술(AI, ADC 등) △수익화 경로가 명확하거나 이미 상업화에 성공한 실적 △중장기 주주환원 여력을 갖춘 재무 건전성을 지닌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정부의 코스닥 3000전략과 벤치마크 개편에 따라 코스닥 시장으로 유입될 수십조원의 연기금 자금은 철저히 실적과 글로벌 경쟁력이 검증된 혁신 기업으로 쏠릴 것”이라며 “연기금의 지분 확대 현황은 향후 코스닥 밸류업 시대를 주도할 K바이오 대장주를 판가름하는 가장 확실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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