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문명 전환기, ‘세금도 방임도 아닌 제3의 설계’를 향해 [김현아의 IT세상읽기]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5월 17일, 오후 03:34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AI 시대 미래 전략은 기술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합니다.”

지난 13일 출범한 ‘과학기술·인공지능 미래전략회의’에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강조한 메시지다. AI 기술 발전이 단순한 산업 혁신을 넘어 국가 구조 전반의 변화로 이어지는 문명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엄중한 인식이다.

배 부총리는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도 대전환의 흐름을 재차 역설했다. 그는 “AI는 산업 혁신을 넘어 국가 시스템과 사회 구조, 일상까지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전환기에 있다”며 “앞으로는 개별 기술 경쟁보다 이를 어떤 제도와 산업 구조, 사회 시스템 위에서 활용할 것인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데이터·연산 자원의 독점, 그리고 부의 귀속 문제

AI는 이미 생산성과 산업 구조를 빠른 속도로 재편하고 있다. 향후 기술이 범용인공지능(AGI) 단계로 진입할 경우, 데이터와 연산 자원을 확보한 소수의 거대 기업이 글로벌 경제 질서를 좌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미래의 핵심 쟁점은 기술의 성능 자체가 아니다. 기술이 만들어낸 막대한 부가 어떻게 분배되고,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본질적인 구조의 문제로 수렴된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권의 논의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익숙한 이념 구도 속에서 서로 다른 극단만을 외칠 뿐이다.

한쪽에서는 기술 기업의 초과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해 복지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기본소득’ 등 사후 분배 모델만을 강조한다. 이는 혁신의 발목을 잡는 ‘기업에 대한 과도한 부담’으로 이어지기 쉽다. 반대편에서는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저해한다며 시장 자율성과 성장 중심의 접근만을 내세운다. 이는 격차 확대를 방치하는 ‘시장 방임’의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러나 AI 전환이 만드는 변화는 기존 산업사회의 위기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특정 산업의 흥망이나 단순한 일자리 감소 문제를 넘어, 데이터와 인프라를 둘러싼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구조적 독점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좌우 프레임만으로는 이 거대한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거나 대응하기 어렵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열린 "과학기술 인공지능 미래전략회의" 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과기정통부
◇성장과 분배의 결합, ‘제3의 경로’

이 때문에 최근 논의의 중심은 규제와 감세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설계하는 ‘제3의 경로’로 이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국가 주도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민간 자본과 국민 참여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구조가 그 좋은 예다. AI 산업은 반도체, 전력망, 데이터센터 등 천문학적인 초기 투자가 필요한 이른바 기간 인프라 산업의 성격을 띤다.

국민이 직접 투자자로 참여하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경우, 기업에는 자본 조달의 부담을 덜어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동시에 국민에게는 AI 산업의 성장에 따른 결실을 배당의 형태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자산 형성의 기회를 넓혀준다. 세금 중심의 강제적 재분배도, 완전한 시장 방임도 아닌 성장과 분배의 건강한 합일 모델이다.

◇패러다임 시프트를 위한 전제 조건

다만 이러한 구조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교한 전제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투자 손실이 발생했을 때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공공성과 수익성 간의 치밀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가 개입하는 범위와 방식에 대한 투명하고 정교한 가이드라인이 선행되어야 한다.

AI 전환기는 단기적인 사업 지원책이나 보조금 몇 푼을 고민하는 시기가 아니다. 국가 운영 방식 자체를 패러다임 시프트 해야 하는 골든타임이다. 기업의 혁신 동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격차를 선제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균형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앞으로 다가올 초지능 시대의 성패는 기술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보다, 그 기술을 어떤 제도와 사회 시스템 위에서 운영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대한민국이 단순한 기술 추격자를 넘어 미래 인류 질서의 설계자가 되기 위한 담대한 여정은 바로 이 ‘제3의 설계’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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