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젠슨 황과 용산 전자상가…AI 혁명의 역설

IT/과학

뉴스1,

2026년 6월 08일, 오전 05:30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서울 마포구 ‘T1 베이스 캠프’를 방문해 ‘페이커‘ 이상혁을 비롯한 e스포츠 구단 T1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선수단을 만나서 추첨을 통해 선물할 엔비디아의 ‘RTX 스파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 2026.6.5 © 뉴스1 이광호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최근 정보기술(IT)업계와 증권가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인물이다.'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가죽 재킷을 걸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모습은 인간적인 호감을 더한다.

그의 연관 검색어 중 하나는 '용산 전자상가'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용산 전자상가를 돌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컴퓨터 부품을 판매했던 일화 때문이다.

황 CEO의 발품은 한국 피시방 문화 보급과 맞물려 엔비디아의 초기 성장을 견인했다. 그리고 타국의 상가를 누비던 그는 어느새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넘긴 글로벌 빅테크의 수장이 됐다.

올해 대만에서 열린 'GTC 타이베이'에서 그는 인공지능(AI)이 이끄는 기술 생태계의 낙관적 미래를 역설했다. 황 CEO는 생산성 향상과 고용 창출 등 AI가 열어갈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만 IT 산업의 출발점인 PC 부품 시장은 역풍을 맞고 있다.젠슨 황이 만든 AI 혁명이, 역설적으로 젠슨 황을 키워낸 시장부터 바꾸고 있는 셈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컴퓨텍스 2026' 취재 중 방문한 대만의 '용산 전자상가', 광화상창(光華商場)의 풍경이 이를 방증한다.

대만 타이베이시 중정구에 위치한 전자상가 ‘광화상창’(光華商場) 앞에서 량순원 타이베이 광화상가 발전협회 총간사가 4일(현지시간)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2026.6.4 © 뉴스1 김민재 기자

컴퓨텍스 행사장을 휩쓴 AI 열풍의 온기는 광화상창까지 닿지 못했다. 기업들이 AI 부품 생산에 몰두하면서 상인들의 주력 상품인 PC 부품을 구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량순원 타이베이 광화상가 발전협회 총간사는 "대형 제조사들이 AI 부품에만 몰두하다 보니 매장에 풀리는 물건은 과거에 확보해 둔 재고 부품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광화상창의 풍경은 AI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존 시장의 질서를 냉정하게 재편한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기술 변혁은 필연적으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운다. AI 열풍으로 엔비디아는 전성기를 맞았지만, 하드웨어 생태계의 모태였던 오프라인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에도 현장은 체념하지 않고 자구책을 모색 중이다. 개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소형 PC 조립, 비규격 제품 수리 등 대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틈새'를 파고들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AI 혁명은 기존의 문법을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있다. 개인용 PC 소비에 기대던 컴퓨터 시장은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AI 서버와 칩셋 위주로 재편됐다.

이는 한국의 용산 전자상가도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한때 젠슨 황 CEO가 직접 발품을 팔며 영업을 뛸 만큼 호황을 자랑했던 용산 전자상가는 e커머스 흐름에서 비껴난데다 AI 활황에 따른 글로벌 부품난까지 겹치며 어느때보다 혹한기를 맞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AI 시대의 가장 역설적인 장면인지 모른다. 과거 젠슨 황을 키워낸 것은 수많은 PC방과 전자상가, 조립PC 시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AI가 이끄는 새로운 질서는 바로 그 생태계부터 바꾸고 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빚어낸 파고 속에서도 묵묵히 활로를 찾아내는 광화상창의 상인들은 증명하고 있다.

광화상창 상인들은 AI를 만들지 않는다. 엔비디아처럼 시가총액 수조 달러 기업을 세울 수도 없다. 하지만 AI가 재편한 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변화를 체감하고 적응하고 있다. 용산도 그렇게 노력하는 중이다.

결국 기술 혁명이 만드는 것은 승자만이 아니다. 새로운 질서에 밀려나는 산업도, 그 틈에서 다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사람도 함께 만들어낸다.

AI 시대를 움직이는 힘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려는 인간의 집요함일지도 모른다.

김민재 뉴스1 ICT과학부 기자


minja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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