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조치로 국내 서비스가 즉각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해외 프론티어 AI 모델에 크게 의존해온 국내 AI 생태계의 취약한 구조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특정 국가나 기업의 정책 변화에 따라 핵심 AI 모델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AI 주권’과 독자 모델 확보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한층 커지고 있다.
미토스 5 (사진=앤스로픽)
하지만 고성능 모델 접근이 특정 국가나 사용자군을 대상으로 제한될 수 있다는 사실이 현실화하면서, 서비스는 한국 기업이 만들지만 핵심 두뇌는 해외 기업이 쥐고 있는 구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한이 조만간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서도, 사건 자체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표철민 AI3 대표는 “소버린 AI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사건이었다”며 “이번에 막힌 모델 자체는 조만간 다시 풀릴 것으로 보지만, 모델 성능이 계속 좋아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 모델들을 안정적으로 계속 쓸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 제한이 전면적인 서비스 차질로 번지지는 않았다. 표 대표는 “13일부터 모델이 중단된 것으로 안다”며 “기업용·직장인용 서비스 성격이 있다 보니 (15일) 출근 이후부터 실제 체감이 이뤄지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최홍섭 마음AI 대표도 “미토스나 페이블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전에 막혔기 때문에 당장은 큰 차질은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에이전트 업무에 미토스나 페이블을 붙였더니 생산성이 확 올라갔고, 그 상태에서 갑자기 막혔다면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접속 차단보다 성능 통제가 더 문제”
문제는 이번 사태가 일회성 접속 장애가 아니라 고성능 AI 모델 공급망이 언제든 통제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는 점이다.
임정환 모티프테크놀로지스 대표는 “앞으로 언제든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AI 기업들의 해외 모델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개발 업무와 서비스 구축 과정에서 GPT나 클로드 등 해외 프론티어 모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접속 차단보다 더 민감한 문제는 모델 성능 통제 가능성이다. 임 대표는 “미토스 5를 금지했다는 점보다, 사용자에게 알리지 않고 성능을 낮출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가 나왔던 게 더 문제”라며 “개발자들이 API를 쓰다 보면 ‘어제는 똑똑해서 잘했는데 오늘은 멍청해졌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외 모델 사업자가 접근권뿐 아니라 성능이나 특정 기능을 조정할 수 있다면 국내 제품 품질과 개발 일정이 외부 변수에 좌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관영 로데이터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안을 “AI 수출통제 범위가 물리적 인프라에서 클라우드 위 AI 사용 권한으로 확장된 사례”로 봤다. 그는 “그동안 AI 수출통제라고 하면 GPU나 반도체 장비 같은 물리적 인프라를 떠올렸지만, 이번에는 프론티어 AI 모델 접근성 자체를 국가안보와 수출통제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 국방, 금융, 의료 같은 국가기간 인프라 영역에서 해외 프론티어 AI를 업무 프로세스에 적용하려던 기업과 기관은 미국 정부 한마디에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됐다”고 했다.
(사진=AFP)
소버린 AI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 대표는 “그동안 GPT나 클로드 같은 해외 모델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소버린 AI 논의가 상대적으로 절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며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도 이런 인식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안은 중국만을 겨냥한 규제가 아니라 모든 외국에 대한 접근 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독자 프론티어 AI 확보를 위해 국가 프로젝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 대표는 “국내 독자 모델에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글로벌 모델과 제대로 경쟁하려면 최소한 조 단위 이상 투자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과도한 위기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소버린 AI가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고, 이런 일 때문에라도 해야 한다”면서도 “이번 사안을 너무 침소봉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버린 AI는 하던 대로 우리의 플레이를 해나가면 되고, 너무 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략을 차분히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안 특화 AI도 대응 과제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미토스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된다”며 “GPT 사이버 테스트도 진행해야 하고, 국내에서도 보안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착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론티어 AI 모델이 공공·국방·금융·의료 등 국가기간 인프라에 적용될수록 모델 접근권과 성능 안정성은 산업 경쟁력과 안보의 문제가 된다. 해외 모델을 활용하더라도, 핵심 분야에서는 대체 가능한 독자 모델과 보안 특화 모델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는 국내 AI 업계에 해외 프론티어 모델을 활용하는 국가에 머물 것인지, 자체 모델과 인프라를 갖춘 AI 개발 국가로 갈 것인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장은 제한적인 충격에 그쳤지만,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국내 AI 서비스와 개발 현장이 받을 파장은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