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영업익 1000억으로'…호실적 나오는 신약·플랫폼의 조건[숫자 나오는 바이오③]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6월 26일, 오전 08:31

[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임상 2상에 들어갔다', '글로벌 제약사와 계약 체결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한 줄이 바이오텍 주가를 두 배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텍을 바라보는 잣대가 바뀌었다. 신약 파이프라인 개수와 임상 진입 소식보다 이제는 손익계산서 위에 찍힌 숫자가 기업 가치의 출발점이 됐다. 반도체가 실적 장세의 1막을 열었다면 2막을 여는 주인공 중 하나로 실제로 돈 버는 바이오텍이 꼽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조건의 선두에는 SK바이오팜(326030)과 알테오젠(196170)이 있다. 각자의 방식은 다르지만 양사는 자본시장에서 빌려 쓰는 돈이 아닌 스스로 벌어들인 현금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리가켐바이오(141080)와 에이비엘바이오(298380), 에이프릴바이오(397030)는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 계약이 손익계산서 위에 온전히 실현되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전환점의 기업들로 여겨진다. 이데일리 제약·바이오 프리미엄 콘텐츠 팜이데일리는 이 다섯 회사의 숫자를 통해 국내 바이오텍이 진짜 빅 바이오텍으로 가는 길에 대해 분석해봤다.

SK바이오팜과 알테오젠 실적 전망치 (자료=각사, GPT)
SK바이오팜과 알테오젠 실적 전망치 (자료=각사, GPT)


◇수익 모델의 양대 산맥, '글로벌 직판' vs '플랫폼 마일스톤'

국내 바이오텍이 실제 영업이익을 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SK바이오팜처럼 미국 시장에서 직접 약을 파는 글로벌 직판 모델이 꼽힌다. 다른 방식은 알테오젠처럼 자사 기술 플랫폼을 글로벌 빅파마의 파이프라인에 얹어 마일스톤과 로열티를 받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다. 두 모델은 재무제표 구조와 리스크·보상 구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SK바이오팜의 성장 궤적은 '글로벌 직판 바이오텍이 손익분기점을 넘긴 뒤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XCOPRI)를 미국에서 직접 판매하는 이 회사는 2022~2023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2024년 영업이익 963억원으로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에는 매출 7067억원, 영업이익 2039억원(전년 대비 112% 증가)까지 실적을 개선했다.

비결로 이른바 이익 레버리지가 꼽힌다. SK바이오팜은 미국 판매 조직, 본사 인프라 등 고정비를 이미 갖췄다. 이런 구조에서 엑스코프리 처방이 한 건씩 늘어날 때마다 추가 판관비는 거의 늘지 않으면서 매출이 그대로 영업이익으로 꽂힌다. 2024년에서 지난해 사이 매출이 29% 증가할 때 영업이익이 112% 뛰는 레버리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혁신신약 하나를 미국에서 직접 파는 모델이 한 번 궤도에 오르면 어떤 숫자를 만들어내는지 SK바이오팜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알테오젠은 다른 방식이지만 결과는 비슷하게 뚜렷하다. 알테오젠은 미국에 공장도 영업사원도 없다. 그런데도 알테오젠은 조 단위 규모의 글로벌 계약을 잇달아 따냈다. 비결로 피하주사(SC) 제형 변환 플랫폼 기술 하이브로자임(ALT-B4)이 꼽힌다.

정맥주사 방식의 항암제나 면역치료제를 피하주사로 바꾸면 환자 편의성이 크게 높아진다. 세계 매출 1위 항암제 키트루다의 SC 제형인 키트루다 큐렉스(Keytruda Qlex™)가 알테오젠의 플랫폼 기술로 만들어졌다. 키트루다 큐렉소는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청(EMA) 허가를 취득하며 상업화가 본격화됐다.

알테오젠의 수익 구조는 단순하다. 글로벌 빅파마가 자사 플랫폼 위에 약을 얹어 전 세계에 팔면 매출에 연동된 로열티와 단계별 마일스톤이 들어온다. 생산 비용도, 판매 비용도 없다. 원가율이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순수 플랫폼 비즈니스인 것이다.

키트루다 큐렉스 상업화 마일스톤 수령과 아스트라제네카와의 SC 전환 라이선스 계약 선급금 등이 지난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알테오젠은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 2159억원, 영업이익 1069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계약을 통해 알테오젠의 실적 성장이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나증권은 알테오젠의 올해 매출을 전년 대비 133% 급증한 4712억원, 영업이익은 3082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로열티 수익이 본격화되는 시점에는 영업이익률이 65%를 상회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김선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알테오젠은 이번 계약으로 올해 1분기에만 약 595억원의 선급금을 확보하게 됐다"며 "로열티 조건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파트너사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겠다는 시장과의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LEQEMBI)의 고용량 SC 제형 개발에 ALT-B4가 활용될 가능성도 열려 있어 추가적인 업사이드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알테오젠 주요 실적 지표 현황 (자료=하나증권, 단위 십억원)
알테오젠 주요 실적 지표 현황 (자료=하나증권, 단위 십억원)




◇조 단위 기술수출의 실적화, 마일스톤이 만드는 '진짜 매출'과 그 전제 조건

국내 바이오텍의 기술수출 소식은 매년 쏟아지지만 계약 총액이 그대로 회사 매출로 반영되는 경우는 없다. 조 단위 규모 계약의 실체는 보통 이렇다. 계약 체결 시점에 전체의 5~10% 정도인 업프런트(계약금)만 받는다. 나머지는 △임상 1상 완료 △2상 진입 △3상 성공 △품목허가 신청 △최종 품목허가 △상업화 매출 달성 등 단계마다 나눠 마일스톤으로 유입된다. 파이프라인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때만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수익인 셈이다. 그 조건이 채워지는 속도가 빠른지 충분한지가 바이오텍의 재무제표를 결정한다.

리가켐바이오는 항체·약물 결합체(ADC) 원천 플랫폼 컨쥬올(ConjuAll)을 앞세워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간 매년 1건 이상, 총 14건의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2024년 연결 매출은 1259억원으로 전년 대비 269% 급증했다. 영업손실은 209억원으로 손실 폭을 대폭 줄였다.

다만 지난해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공격적인 연구개발(R&D) 투자로 연구개발비가 매출의 150% 수준인 1957억원까지 급증하면서 영업손실이 1065억원으로 확대됐다. 신규 기술수출도 지난해 0건에 그쳤다. 다만 얀센이 옵션을 행사할 경우 2억달러(약 2600억원) 규모의 마일스톤을 수령할 수 있는 기회가 대기하고 있다고 리가켐바이오 측은 설명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 플랫폼을 앞세워 지난해 11월 사노피와 뇌혈관 질환 플랫폼 기술에 대한 최대 9조원 규모의 대형 기술수출을 성사시키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연결 매출은 793억원으로 전년(334억원) 대비 137.6% 급증했다. 영업손실도 404억원으로 전년(594억원)에 비해 적자 폭이 32% 줄었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자가면역질환 단백질 플랫폼 기술이전으로 2024년 매출 275억원, 영업이익 168억원(영업이익률 61.3%)의 깜짝 실적을 기록했다. 일회성 마일스톤이 한 해 재무제표를 완전히 바꿔놓은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해 에는 신규 기술료 유입이 없으면서 매출이 22억원으로 급감하고 영업손실 73억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여전히 후속 파이프라인 개발과 기술이전 추진을 이어가고 있다.하지만 선순환 모델로 부르기 위해서는 마일스톤이 끊기지 않고 들어오는 파이프라인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선결 과제로 여겨진다.

이들 다섯 기업이 서로 다른 궤도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진짜 빅 바이오텍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자본시장이 지금 바이오텍에 요구하는 조건은 지속 가능성과 반복적인 기술수출, 현금흐름 개선 등이다.

실제 에이프릴바이오가 2024년 호실적을 낸 뒤 지난해 급격히 추락한 사례는 마일스톤의 규모만큼이나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에이비엘바이오의 9조원 규모의 계약 역시 단계별로 조건이 충족될 때만 현금이 들어온다는 점에서 임상 성공 속도가 실적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국내 바이오텍 한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는 기술수출 총액이 시가총액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그 계약이 언제, 얼마씩 현금으로 들어오는지 그리고 다음 계약도 있는지를 먼저 본다"며 "주식을 발행해 연명하는 바이오텍과 스스로 번 돈으로 R&D를 굴리는 바이오텍 사이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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