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휴머노이드보다 서비스가 먼저"…네이버 AI 로보틱스 전략[only이데일리]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6월 28일, 오후 02:38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로봇이 춤추고 덤블링하는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로보틱스의 본질은 결국 사용자와 고객에게 실제 가치를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네이버(NAVER(035420))의 미래기술 연구를 이끄는 네이버랩스 유럽의 플로랑 페로닌(Florent Perronnin) 박사는 지난 26일 경기 성남시 네이버 1784에서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화려한 시연보다 실제 서비스로 구현되는 로봇이 경쟁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에서 쿵푸를 선보이거나 하프마라톤에 참가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네이버는 기술 과시보다 일상에서 활용되는 서비스 중심 로보틱스를 지향한다는 설명이다.

컴퓨터비전과 인공지능(AI)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페로닌 박사는 파나소닉과 제록스 리서치센터, 페이스북 AI 리서치센터장을 거쳐 2017년 네이버랩스 유럽에 합류했다. 이미지넷(ImageNet)과 파스칼 VOC(PASCAL VOC) 등 국제 AI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2010년 발표한 대규모 이미지 분류 연구는 학술적 영향력을 인정받아 2020년 유럽컴퓨터비전학회(ECCV) ‘쿤더링크 테스트 오브 타임상(Koenderink Test of Time Award)’을 받았다.

프랑스 그르노블에 위치한 네이버랩스 유럽은 네이버가 2017년 인수한 제록스 리서치센터를 모태로 설립됐다. 현재 26개국 연구진이 로봇을 위한 피지컬 AI(물리 지능)와 스페이셜 AI(공간 지능)를 연구하며 차세대 로보틱스 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네이버랩스 유럽의 플로랑 페로닌 박사가 이데일리와 화상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네이버)
네이버랩스 유럽의 플로랑 페로닌 박사가 이데일리와 화상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네이버)
◇“AI 경쟁은 이제 모델보다 서비스”

페로닌 박사는 최근 AI 모델의 성능 향상 속도가 이전보다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2~3년간 모델 규모가 과거처럼 급격히 커지지 않았다”며 “이제는 수조 개 파라미터를 활용하는 초거대 모델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큰 이유로 고품질 데이터 부족을 꼽았다.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Garbage in, Garbage out)이라는 말처럼 데이터 품질이 곧 모델의 품질을 결정한다”며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이를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네이버랩스 유럽은 모든 AI 분야를 아우르기보다 로보틱스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인 네이버 1784에서 자율주행 로봇 ‘루키’가 매일 축적하는 실제 서비스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된 경쟁력이라는 설명이다.

페로닌 박사는 “경쟁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실제 로봇 서비스 환경과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 로보틱스에 집중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네이버랩스 유럽은 2021년 ‘파운데이션 모델’ 개념이 등장하자 이를 로봇에 적용한 연구를 시작했다. 대표 성과인 3D 비전 파운데이션 모델 ‘더스터(DUSt3R)’는 사진 한두 장만으로 공간을 3차원으로 재구성해 로봇이 새로운 환경을 빠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2023년 발표 이후 1600회 이상 인용되며 3D 비전 분야의 대표 기술로 자리 잡았고, 메타·구글 딥마인드·엔비디아 등의 후속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는 앞으로 AI 경쟁의 핵심은 모델 자체보다 서비스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앤스로픽을 예로 들며 “좋은 모델도 중요하지만 ‘클로드 코드’처럼 사용자가 체감하는 서비스가 뛰어났기 때문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결국 승자는 모델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네이버의 ‘온 서비스 AI’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네이버는 자체 초거대 AI인 하이퍼클로바X를 검색, 지도, 커머스, 클라우드, 로보틱스 등에 적용하며 실제 서비스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다시 AI 고도화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네이버랩스 유럽이 공개한 가볍고 빠른 차세대 로봇 뇌 ‘디바인’ (사진=네이버)
네이버랩스 유럽이 공개한 가볍고 빠른 차세대 로봇 뇌 ‘디바인’ (사진=네이버)
◇“화려한 시연보다 중요한 건 사용자 가치”

페로닌 박사는 로보틱스에서도 승부처는 화려한 기술 시연이 아니라 사용자 가치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 미국 매체가 네이버 1784의 자율주행 로봇 ‘루키’를 “바퀴 달린 쓰레기통”이라고 표현한 사례를 언급하며 “다소 모욕적이지만 외형은 화려하지 않을 지 몰라도 루키는 실제로 사람들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비스를 운영하면 실제 사용자 피드백과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이는 다시 AI와 서비스를 개선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네이버의 멀티로봇 제어 시스템 ‘ARC(AI-Robot-Cloud)’다. 클라우드가 건물 안 여러 로봇의 이동과 업무를 실시간으로 통합 관리해 로봇의 연산 부담을 줄이고 운영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로봇 상용화의 과제로 실시간성, 안전성, 데이터 효율성을 꼽았다. “챗봇은 답변이 1초 늦어도 되지만 로봇은 판단이 1초만 늦어져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로보틱스는 인터넷처럼 방대한 학습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적은 데이터로도 사람처럼 학습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고민의 결과물이 최근 공개한 범용 인코더 ‘디바인(DIVINE)’이다. 디바인은 2D와 3D 정보를 하나의 모델로 통합해 적은 메모리와 연산 자원으로도 로봇이 실시간 판단을 수행하도록 돕는다. 네이버랩스 유럽은 연내 언어와 오디오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해 실제 로봇 서비스에 적용할 계획이다.

네이버 1784 사옥에서 3000명이 넘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루키'가 다양한 물품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사진=네이버)
네이버 1784 사옥에서 3000명이 넘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루키'가 다양한 물품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사진=네이버)
◇“소버린 AI 더 중요해져…한국·유럽, 함께 가야 한다”

페로닌 박사는 최근 미국 정부의 앤스로픽 최상위 AI 모델 접근 제한 논란을 계기로 ‘소버린 AI(주권형 AI)’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소버린 AI는 이제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독립성은 AI뿐 아니라 GPS 같은 핵심 기술 전반에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이 자체 위성항법시스템을 구축한 것처럼 미국 기술 의존도를 줄이고 핵심 기술의 자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 AI 스타트업인 미스트랄 AI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창업자들은 메타에서 함께 일했던 연구자들로, 프랑스의 우수한 교육과 글로벌 빅테크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세웠다”며 “유럽은 시장이 분산돼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뛰어난 인재와 대기업, 스타트업, 산학협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건강한 AI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추진하는 ‘AI 3강’ 전략에 대해서도 순위 경쟁보다 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3강이라는 숫자보다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협력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며 “한국과 유럽, 캐나다가 힘을 모은다면 미국과 중국 중심의 AI 패권 구도에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를 선택한 이유 역시 이러한 가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네이버는 사용자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AI를 개발하고,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며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 기업 간 협력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비전 분야 권위 있는 석학인 네이버랩스 유럽의 플로랑 페로닌 박사(사진=네이버)
컴퓨터비전 분야 권위 있는 석학인 네이버랩스 유럽의 플로랑 페로닌 박사(사진=네이버)
◇“구글과 경쟁해 살아남은 네이버…창업자의 철학이 나를 움직였다”

페로닌 박사가 10년 가까이 네이버랩스 유럽에서 연구를 이어온 배경에는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하며 독자적인 플랫폼을 지켜낸 네이버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그는 “프랑스도 자체 검색 서비스를 만들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지금도 대부분 구글을 사용한다”며 “한국은 프랑스보다 작은 시장임에도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해 자체 플랫폼을 지켜냈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해진 창업자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창업자는 네이버를 만든 이유로 한국 문화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1999년 당시에도 야후 같은 미국 포털은 있었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최적화된 서비스는 아니었다”며 “기술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와 문화에 더 쉽게 접근하도록 돕겠다는 비전이 매우 아름답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페로닌 박사는 “그 미션에 기여하고 싶었고, 창업자의 열정은 지금까지도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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