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바이오 下] 빅파마 쫓는 K바이오…우주 신약 주권 노린다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7월 06일, 오전 08:32

[이데일리 홍주연 기자]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우주를 주목하는 이유는 비용과 주권에 있다.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신약개발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에 우주는 단순한 실험 공간을 넘어 한국이 외부 기술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소버린 가능성의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머크·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빅파마가 10년 가까이 닦아온 길을 국내 우주바이오기업이 빠르게 추격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발사·투자·연구…우주의약 경쟁 뛰어든 국내 기업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이달 발간한 우주 환경을 활용한 바이오의약 혁신 기술 동향 보고서는 한국이 우주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주요 선진국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실제 우주 실험 진입에 성공했다고 독자 모듈과 독자 위성, 무인 자동화 실험을 활용하면 추격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빅파마 추격의 선봉에 선 국내 기업으로 스페이스린텍이 꼽힌다. 스페이스린텍은 지난해 8월 국내 최초 우주의약 연구 모듈 BEE-PC1을 스페이스엑스(X) 팰컨 9 로켓에 실어 ISS로 보내는데 성공했다. BEE-PC1은 단백질 결정화 자동화 플랫폼으로 우주비행사의 개입 없이 단백질 결정 성장 과정을 자동으로 관찰하도록 설계됐다. 미세중력 환경에서도 고순도·고균질 단백질 결정을 자동화 공정으로 확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스페이스린텍은 지난해 11월 누리호 4호기에 국내 최초 우주바이오 전용 큐브위성 비천(BEE-1000)을 탑재해 우주로 쏘아올리는데 성공했다. 해당 의약 연구 모듈에서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주성분 펨브롤리주맙의 결정화 실험을 자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단백질 의약품 결정화를 큐브위성 플랫폼에서 진행한 것은 세계 최초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 ISS라는 대형 인프라에 의존하던 우주 신약 연구를, 소형 위성을 활용한 반복 가능한 모델로 전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페이스린텍은 지난해 두 차례 위성 발사에 이어 올해는 누리호 5차 발사를 비롯해 총 세 차례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에는 그 횟수가 8차례로 늘어난다. 발사가 잦아지고 비용이 감소하고 있는 만큼 스페이스린텍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령(003850)도 우주 헬스케어 생태계 선점을 위해 공격적으로 지분 투자를 단행해온 대표 주자로 꼽힌다. 보령은 우주의학을 기업의 핵심 성장 전략으로 선언한 유일한 국내 제약사이기도 하다. 보령은 2022년 미국 상업용 우주정거장 개발사 액시엄 스페이스에 총 6000만 달러(약 800억원)를 투자하며 우주의학에 본격 진출했다.

이후 2024년 1월에는 액시엄 스페이스와 우주 합작법인 브랙스 스페이스(보령 51%, 액시엄 스페이스 49%)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보령은 지구 저궤도 인프라를 활용한 국내 독점 사업권까지 확보하며 암과 노화 등 관련 신약 개발 기반을 마련했다.

보령의 이러한 우주정거랑 인프라 확보는 국내 주요 기관과 기업이 민간 우주정거장을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 창구가 됐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나아가 미국 최초의 상업용 달 착륙선 기업인 인튜이티브 머신스에도 1000만달러(약 154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집행하며 사업 영역을 달까지 넓히고 있다. 이처럼 보령은 글로벌 우주 인프라 접근권 확보와 생태계 조성에 특화된 전략을 취하고 있다.

동아에스티(170900) 자회사 앱티스는 정부 지원 아래 우주 환경에서 생산된 항체를 활용한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앱티스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한 한국형 'ARPA-H 프로젝트'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ARPA-H 프로젝트는 고비용·고난도이지만 파급효과가 큰 임무 중심형 연구개발(R&D)을 통해 국가 보건의료 난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앱티스가 참여한 분야는 의료난제 극복 우주의학 혁신의료기술 개발로 우주 환경에서의 신약 개발이 핵심으로 꼽힌다. 앱티스는 우주환경에서 생산된 항체를 이용한 항체·약물 접합체 신약 후보물질의 제작과 최적화 과정, 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한림대학교 연구팀이 우주 생물학 연구 탑재체 바이오캐비닛을 차세대중형위성 3호기에 실어 우주 3차원(3D) 바이오프린팅과 줄기세포 분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상업적 실증과 학계의 기초 연구가 동시에 우주를 향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생태계'…규제 표준 선점이 관건

성과가 단발성에 그치지 않으려면 산업 생태계 구축이 관건으로 여겨진다. 단발성 우주 실험을 반복 가능한 연구 인프라로 전환이 핵심이다. 실험 결과 국제 검증, 연속 탑재 실험 체계, 국내 우주바이오 컨소시엄, 우주 CDMO 생태계, 우주 실험 데이터의 규제 활용 기반 마련 등이 과제로 꼽힌다.

규제가 가장 큰 변수로 파악된다. 우주에서 의약품을 만드는 일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영국 정부는 최근 우주에서 의약품을 제조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 경로를 세계 최초로 제시했다.

정부 기관 간 협력을 통해 우주에서 개발·생산된 의약품이 실제 환자 치료에 활용될 수 있도록 명확한 규제 경로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우주에서 생산된 의약품의 안전성과 품질 관리, 승인 절차 등을 검토해 관련 규제 체계를 정비할 계획이다. 영국은 2028년 우주에서 만든 약물의 임상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우주항공청과의 논의가 시작됐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식약처 내 우주바이오의약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우주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의제를 선제적으로 제안해 한국이 규제 표준을 작성하는 국가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이 규제 논의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표준 수립에 조기 참여해야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국내 바이오 산업이 우주에 거는 기대의 핵심은 결국 소버린(Sovereign, 자국이 직접 개발·운영·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다.

스페이스린텍은 희귀질환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대형 제약사들은 투자 비용 대비 이윤이 적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꺼려왔디. 하지만 우주 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신약 개발 비용이 현재의 10분의 1 수준까지 낮아지면 국내 제약사들도 적은 비용으로 신약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윤학순 스페이스린텍 대표는 "비용적 부담으로 그동안 글로벌 빅파마에서만 다룰수 있던 희귀질환 같은 영역이 국내 제약사들에게도 수익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다"며 "국내 기업이 독자적으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면 제약 분야의 소버린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백신처럼 국가적으로 필요한 의약품을 우주에서 자체 개발·공급하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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