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과기한림원 제공)
국제백신연구소 현장에는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 항상 구순(90세)을 훌쩍 넘긴 백발의 연구자도 함께 자리했다. 그는 매일 연구 현장에서 후배 과학자들과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국내 발생생물학을 개척하고 기초연구 기반을 닦았다.한국과학기술한림원을 설계해 초대 원장을 지냈고 서울대 총장과 교육부 장관까지 역임하며 정책 행정가로서도 헌신한'대가'(大家) 조완규 박사가 13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98세.
조 원장의 삶은 연구실에서 시작해 대학과 정부, 그리고 한국 과학기술계의 제도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생물학자이면서 교육자였고, 행정가이자 과학기술 정책의 설계자였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기초과학의 발전 없이 다른 분야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며 안정적인 연구비 지원을 강조했고, "후배들은 경험과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자산이 된다"고 당부했다.
1928년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직후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연구 환경에서 학자의 길을 걸었다.
실험 장비가 부족해 전구와 온도계를 이용해 직접 실험 장치를 만들었고, 연구 재료를 구할 수 없어 전국 산부인과를 찾아다니며 출생성비를 조사했다. 그는 훗날 당시를 회고하며 연구실의 현미경이 "생물학과 자산목록 1호"였을 정도로 연구 환경이 열악했다고 말했다.
그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한 연구는 국내 발생생물학의 출발점이 됐다. 포유동물 난자의 성숙 과정을 규명했고, 난자와 수정란, 배아를 미세관에 담아 배양·운반하는 '미세관배양법(Micro-tube Culture Method)'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발생생물학 교과서에 실릴 만큼 국제적인 성과를 거뒀다.
연구자의 길은 교육과 제도 개혁으로도 이어졌다.
1975년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초대 학장을 맡아 교수 공개채용제와 연구비 중앙관리제를 도입했고, 자연과학종합연구소를 설립해 기초과학 중심 연구 체계를 구축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어느 기구에서 어떤 일을 맡든 기관의 불합리한 점을 찾아 개혁하면서 합리적 체계를 갖추도록 노력했다"며 자신의 행정 철학을 '개혁주의'로 설명했다.
1987년 서울대 총장으로 취임해서는 학생 정치활동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학생 징계권을 교수회의로 넘겼다. 당시 정부의 반대에도 대학 자율을 선택했고, 훗날 이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이어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는 대학 자율화와 초·중등학교 컴퓨터 교육 확대를 추진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기틀을 닦은 것도 조 원장의 유산 중 하나다.
1994년 초대 원장을 맡은 그는 기관 명칭부터 바꿨다. '아카데미' 대신 우리 역사 속 명칭인 '한림원'을 제안했고,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산하 조직이던 한림원을 독립법인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한림원은 정부가 올바른 과학기술 정책을 세워나가도록 선의의 압력단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회원 선발 원칙만큼은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회원이 될 사람이 빠지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격이 없는 사람이 회원이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강조하며 창립회원 500명을 다시 심사해 40여 명만 남기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이 같은 엄격한 기준은 영국왕립학회 등 세계 주요 한림원과의 교류를 이끌었고, 오늘날 한림원의 권위와 국제적 위상의 출발점이 됐다.
아직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 되는 것은 국내 과학자의 최고 영예로 여겨진다.
그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태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유전공학학술협의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유전공학육성법' 제정을 이끌었다. 또 국제백신연구소(IVI) 국내 유치위원장을 맡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기구 연구소 유치에 기여했으며, 이후에도 후원회 이사장 등을 맡아 개발도상국 백신 연구 지원을 이어갔다.
과학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일관됐다.
그는 "과학의 결과는 기술로 전환되고, 기술은 산업으로 이어진다"며 "과학기술은 나라 경제를 살리는 주체"라고 강조했다. 연구실의 발견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신념은 연구자와 교육자, 행정가로 살아온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었다.
많은 업적에도 '그저 조용히 살다가 지나간 사람', '뭐라도 해보려 애는 썼다' 정도로만 기억해줘도 고맙겠다고 생전 인터뷰에서 밝힌 그다.
장례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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