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마법 뒤 과학…'오디세이'에 담긴 고대인의 서사

IT/과학

뉴스1,

2026년 8월 11일, 오전 06:10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 포스터(유니버설 픽처스 공식 예고편 갈무리)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에서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외눈박이 키클롭스와 맞서고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간다. 마녀 키르케는 그의 부하들을 돼지로 바꿔버린다. 신과 괴물, 마법이 뒤섞인 장면들이다.

영화의 바탕이 된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는 당시 사람들이 실제 바다를 건너고 식물을 이용하며 자연을 이해했던 경험과 지식도 녹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10일 과학계에 따르면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는 지난달 23일 영화 개봉을 계기로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항해·천문·식물 등 고대의 과학 지식을 집중 조명했다. 네이처는 작품을 통해 청동기시대 그리스인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에서 오디세우스가 탄 배가 거대한 소용돌이 '카리브디스'를 피해 항해하는 장면. 호메로스의 원작에서 카리브디스는 바닷물을 집어삼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존재로 묘사된다.(유니버설 픽처스 공식 예고편 갈무리)

괴물 피해 바다 건넌 오디세우스…실제 뱃사람의 경험
대표적인 사례는 오디세우스의 항해다.

루퍼트 만은 2019년 고전학 학술지 앤티크손(Antichthon)에 발표한 연구에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배의 구조와 항해법, 바다와 지형에 대한 묘사를 실제 고대 항해 경험과 비교했다.

눈에 띄는 것은 배가 고장 나거나 난파되는 순간까지 꽤 구체적으로 묘사됐다는 점이다. 작품에는 폭풍을 만난 배에서 돛대를 앞쪽에서 지탱하던 줄이 끊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돛대가 뒤로 넘어지면서 조타수를 덮친다. 반면 돛대의 뒤쪽을 붙들던 줄은 남아 있다.

만은 당시 배의 구조를 고려하면 앞쪽 줄이 끊어졌을 때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배를 직접 다뤘거나 이를 가까이서 본 사람의 경험이 반영된 듯한 세부 묘사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바닷길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카리브디스는 바닷물을 집어삼키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그 반대편에는 괴물 스킬라가 기다린다. 오디세우스는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배를 반대편 바위 쪽으로 붙여 지나간다.

신화에서는 두 괴물 사이에서 살아남는 모험이지만, 괴물을 걷어내면 거센 조류가 흐르는 좁은 바닷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는다. 만은 위험한 조류를 피하기 위해 반대쪽으로 항로를 잡는 모습에서 실제 선원들의 항해 경험을 읽을 수 있다고 봤다.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의 한 장면. 고대 그리스 선원들의 항해는 별자리와 지형, 바람과 파도 등 주변 자연환경을 살펴 방향과 항로를 판단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길을 찾는 장면에도 당시 천문 지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원작에서 오디세우스는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목동자리, 큰곰자리 등 밤하늘을 바라보며 배를 몬다. 칼립소 역시 오디세우스에게 큰곰자리를 기준 삼아 항해하도록 알려준다.

오늘날처럼 배의 위치를 숫자로 찍어주는 위성항법시스템(GPS)은 없었다.

대신 밤에는 별을 보고 대략적인 방향을 잡고, 낮에는 섬이나 곶처럼 눈에 띄는 지형을 살폈다.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는지, 파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중요한 정보였다.

괴물과 신이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항해에는 별자리와 지형, 바람과 파도를 함께 읽으며 길을 찾았던 고대 선원들의 실제 경험이 이야기 속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오디세이'(The Odyssey)에서 키르케 역을 맡은 서맨사 모턴. (유니버설 픽처스 제공)

사람을 돼지로 만든 키르케…'몰리'는 실제 약초였을까
마법처럼 보이는 장면에서도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식물 지식의 흔적을 찾으려는 연구가 있다.

영화에서 마녀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다. 원작에서는 키르케가 이들에게 약을 먹이고, 신 헤르메스가 오디세우스에게 약의 효과를 막아주는 신비한 식물 '몰리'(moly)를 건넨다.

마드리드 자치대의 라파엘 몰리나-베네가스와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의 로드리고 베라노는 2024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 이야기를 실제 식물 지식과 연결해 살펴봤다.

연구진은 사리풀이나 맨드레이크처럼 기억 장애나 환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지중해 식물이 고대 그리스에서도 약용으로 쓰였다는 기존 연구에 주목했다. 이런 독성식물 관련 경험이 키르케의 '마법의 약' 이야기에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키르케의 약을 막아준 몰리 역시 특정 식물 한 종이 아닐 수 있다고 봤다. 지중해에는 생김새가 비슷하면서 비슷한 작용을 하는 식물이 여러 종류 있었고, 고대인들이 이를 비슷한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여러 식물 관련 경험이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몰리'라는 하나의 신비한 식물 이야기로 합쳐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몰리의 실제 정체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두 연구자도 이런 해석은 아직 가설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오디세이아'의 신과 괴물을 실제 역사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수세기 동안 전해지는 사이 고대인들이 바다를 건너고 식물을 이용하며 터득한 경험도 함께 남았다. 괴물과 마법으로 가득한 모험담이 오늘날 고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단서가 되는 이유다.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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