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지난 21일 카카오톡과 AI 사업을 전담하는 ‘카카오AI’, 금융·콘텐츠·모빌리티 등 주요 계열사와 글로벌 신사업 투자를 맡는 ‘카카오X’로 인적분할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 주가는 장중 12% 넘게 급락했다. 이후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며 낙폭을 7%대로 줄여 마감했지만, 시장의 첫 반응만 보면 ‘카카오의 승부수가 시작부터 빗나간 것 아닌가’라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단기 주가로만 재단할 일은 아니다. 분할 자체가 기업가치를 올려주는 마법은 아니지만, AI라는 거대한 변곡점을 맞아 비대해진 조직을 다시 설계하고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겠다는 방향 자체는 환영할 만한 결단이다.
이번 결정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카카오가 스스로 던진 뼈아픈 자성이다.
김도영 카카오X 대표 내정자는 최근 5년간 카카오 이사회 주요 의사결정의 85%, 최근 1년 내부 투자심의의 84%가 자회사 관련 안건이었다고 설명했다. 본사가 AI와 카카오톡이라는 핵심 미래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최고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이 계열사 현안에 묶여 있었다는 뜻이다.
기업이 커질수록 본사는 모든 것을 관리하는 거대한 컨트롤타워가 된다. 하지만 AI 시대의 속도전에서는 이런 구조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
AI 경쟁에서 필요한 것은 5년 뒤의 거창한 마스터플랜만이 아니다. 오늘 결정하고, 내일 제품으로 구현하고, 이용자에게 빠르게 적용하는 기동력이 중요하다.
현금을 벌어들이는 본업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베팅하는 투자사업을 하나의 의사결정 구조 안에 계속 묶어두는 것이 반드시 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이번 인적분할은 ‘회사를 쪼갠 것’이라기보다 AI 시대에 맞게 의사결정 속도를 되찾기 위한 시도로 볼 필요가 있다.
김도영 카카오X 대표 내정자(현 카카오인베스트먼트 대표). 사진=카카오
물론 시장의 불안감에는 이유가 있다.
카카오는 과거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등 주요 계열사 상장 과정에서 기존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겪었다. 시장이 ‘분할’이라는 단어만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번 분할은 구조적으로 물적분할과 다르다. 신설회사를 자회사로 두고 별도 상장해 기존 모회사 주주가 신설회사의 성장 과실을 직접 누리기 어려운 방식이 아니라, 기존 주주가 두 회사의 주식을 지분율대로 교부받는 인적분할이다.
따라서 첫날 주가 급락만으로 이번 분할 자체가 주주가치를 훼손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성격이 다른 두 사업을 떼어내 각자의 가치와 성장성을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시도는 이미 있었다.
2021년 SK텔레콤(017670)은 통신 본업과 반도체·ICT 투자사업을 SK텔레콤과 SK스퀘어(402340)로 인적분할했다. 거래 재개 첫날 두 회사의 주가가 엇갈렸던 것처럼 인적분할이 하루 만에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이벤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였다. SK텔레콤은 통신과 AI 인프라에, SK스퀘어는 반도체 투자에 집중하며 각자의 사업에 맞는 전략과 자본배분을 추진했다.
카카오 역시 이 지점을 봐야 한다.
정신아 카카오AI 대표 내정자(현 카카오 대표). 사진=카카오
카카오AI와 카카오X는 같은 회사 안에서 움직일 때와는 다른 경영 문법이 필요하다.
신설 법인인 카카오AI는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톡이라는 막강한 이용자 기반 위에서 AI 검색, 에이전트, 광고, 커머스 등 새로운 서비스를 얼마나 빠르게 제품화하고 수익으로 연결하느냐가 중요하다. AI를 도입했다는 선언보다 이용자의 행동이 바뀌고 실제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카카오톡 내에서 작동하는 에이전틱AI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존속 법인인 카카오X는 다르다. 테크핀(가상자산 생태계 주도)·콘텐츠(글로벌 팬덤 강화)·모빌리티(로보택시·물류 선도) 등 다양한 사업과 글로벌 신사업에 투자하면서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느냐가 중요하다. 투자 재원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 쓰이는지, 방만한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그 성과가 주주환원으로 돌아오는지를 시장은 지켜볼 것이다.
AI 시대의 조직은 한 번 정해놓은 구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필요하면 떼어내고, 합치고, 잘되는 사업에 자본과 인재를 집중하는 유연성이 기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이제 카카오가 답할 차례다
공은 다시 카카오로 넘어왔다.
시장이 궁금한 것은 분할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청사진이 아니다. 두 회사로 나뉜 뒤 실제로 무엇이 좋아졌는지 보여주는 숫자다.
카카오AI는 AI 도입이 카카오톡 이용자 경험을 어떻게 바꾸고, 톡비즈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어떻게 끌어올리는지 증명해야 한다. 카카오X는 대규모 투자가 방만한 확장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고, 그 성과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자본배분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줘야 한다.
‘두 개의 엔진’을 달았다는 선언만으로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수는 없다.
카카오가 이번 인적분할을 통해 선택한 것은 ‘두 개의 회사’가 아니라 ‘두 개의 속도’다. 카카오AI는 더 빠르게 움직이고, 카카오X는 더 엄격하게 투자해야 한다.
시장이 평가할 것은 분할의 명분이 아니다. 두 회사가 실제로 만들어내는 매출과 이익, 그리고 그 성과가 주주가치로 돌아오는지 여부다.
카카오가 달아놓은 두 개의 엔진이 실제로 성장 속도를 높이고, 그 성과를 주주가 체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느냐.
이제 카카오가 숫자로 답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