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팬을 지켜야 K팝도 강해져···암표 막을 '예매 전 신뢰'

IT/과학

이데일리,

2026년 9월 04일, 오후 03:11

[박상욱 툴스포휴머니티 한국 지사장] 인기 K팝 공연의 예매가 열리면 10초도 안 돼 뜨는 ‘매진’ 안내. 불과 몇 분 뒤 사라졌던 표는 정가의 몇 배가 붙은 채 암표 시장에 다시 나타난다. 이는 단순히 팬이 몰린 탓만은 아니다. 지난 3월 매크로로 K팝 공연 티켓 3만여장을 쓸어 담아 약 71억원어치를 되판 일당이 적발되면서, ‘10초 매진’의 이면도 드러났다. 팬들이 표를 놓친 것은 손이 느려서가 아니라 애초에 사람보다 기계가 먼저 줄을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상욱 툴스포휴머니티 한국 지사장.(사진=툴스포휴머니티)
박상욱 툴스포휴머니티 한국 지사장.(사진=툴스포휴머니티)
이처럼 암표는 개인 간 웃돈 거래에 그치지 않는다. 봇이 1차 시장에서 좌석을 대량 선점해 인위적인 품귀를 만들고, 그 부담을 다시 팬에게 떠넘기는 시장 교란이다. 비싼 값을 치르고 표를 구한 팬은 공연 전부터 지치고, 끝내 표를 구하지 못한 팬은 아티스트와 플랫폼에 대한 신뢰까지 잃는다. 팬덤이 산업의 기반인 K팝에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은 봇을 이용해 구매 제한을 우회하는 행위를 금지해왔고, 일본은 지정 티켓의 영리 목적 고가 재판매를 불법화했다. 영국도 정가를 넘는 재판매를 금지하고 플랫폼에 감시 책임을 지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불법 티켓 재판매 신고가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거의 12배 증가한 한국도 오는 8월 28일부터 매크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부정 구매·판매를 금지하고, 판매액의 최대 50배에 이르는 과징금과 몰수·추징 제도를 시행한다. 입장권 판매자와 통신판매중개업자 등 티켓 유통 사업자에게도 부정구매와 부정판매를 막기 위한 조치 의무가 부과된다. 암표 대응이 사후 처벌을 넘어 플랫폼의 사전 예방 책임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늦었지만 필요한 진전이다.

하지만 의무를 규정하는 것만으로 예매가 곧바로 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실효성은 플랫폼이 어떤 예방 장치를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봇이 좌석을 선점한 뒤 의심 거래를 찾아 취소하는 방식으로는 팬이 빼앗긴 기회를 되돌릴 수 없다. 비정상 접속을 잡아내는 기술 역시 매크로가 정교해질 때마다 방어망을 다시 세워야 하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사후 단속에 더해 예매 단계부터 봇의 진입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구매자의 개인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티켓을 사려는 주체가 실제 사람인지 확인하는 데 있다. 최근에는 월드 ID처럼 개인 정보를 티켓 플랫폼에 공개하지 않고도 실제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인간 인증 기술도 등장했다. 이를 팬클럽 선예매나 1인당 구매 한도와 결합하면 봇의 대량 선점을 줄일 수 있다. 물론 하나의 기술만으로 암표를 뿌리 뽑을 수는 없다. 본인 확인과 공식 재판매, 이상 거래 탐지 등 여러 장치를 병행하며 효과를 검증해야 한다.

고도화된 디지털 예매 환경과 세계적인 K팝 팬덤이 공존해 문제도 크지만, 해법의 효과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한국은 이런 변화를 먼저 시험하기에 적합한 시장이다. 개정법 시행을 계기로 정부와 업계가 세부 기준과 플랫폼의 역할을 함께 구체화해 나가고, 예매처와 기획사도 수요가 높은 공연부터 인간 인증을 접목한 방식을 시범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한국에서 효과가 입증된 공정 예매 모델은 K팝과 함께 세계 시장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공연의 첫 경험은 입장 후가 아니라 예매창을 여는 순간 시작된다. 팬에게 봇과의 경쟁을 떠넘긴 채 온전한 팬 경험을 말할 수는 없다. 이제는 좌석이 실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예매의 출발선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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