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어디가세요?"…`치매노인` 도운 따뜻한 시민들[르포]

사회

이데일리,

2024년 5월 08일, 오후 07:21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할머니 어디 가세요?”

추레한 행색을 한 노인이 서울 구로구 고척근린시장을 느릿느릿 배회하자 이상함을 눈치챈 상인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러자 노인은 “몰라, 엄마 찾아줘 엄마”라는 말을 반복했다. 상인은 직감적으로 ‘치매 환자’임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

8일 서울 구로구 고척근린시장에서 진행된 치매 노인 실종 모의훈련. 치매 노인을 연기한 대역 배우가 한 상인의 신고로 경찰에 인계되는 모습. (사진=이유림 기자)
이 노인은 치매 환자를 연기하는 대역 배우였다. 구로구는 8일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최초로 치매 노인 실종 모의훈련인 ‘G브로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치매 노인이 실종된 상황을 가정해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하고 가족에 인계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훈련하는 것이다. 노인이 혼자 길을 걷고 있다고 무조건 신고가 접수되는 건 아니다. 말을 걸어봤을 때 자신의 이름·거주지를 모르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는 특징을 보여야 한다.

이날 치매 노인을 가장 먼저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정육점 주인 최모씨였다. 최씨는 “어르신이 뭔가를 찾으면서 걸어오시길래 ‘도와드릴까요’ 물었더니, (어수룩한 말투로) ‘아니에요’ 라며 손사래만 치셨다”며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이곳 일대는 노인 비율이 높아 평상시에도 예의주시하며 지켜보는데 그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번째로 경찰에 신고한 건어물집 사장 이모씨는 “할머니가 신발을 바꿔 신고 계셨다”며 “집에 데려다 달라고 말씀하셔서 경찰에 연락했다”고 말했다.
노인의 배회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선뜻 도와주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또 다른 상인은 “그분이 횡설수설하면서 다니시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혹시라도 치매 노인이 아닐 수 있으니까 다가가진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날 상인들과 시민들은 “치매 노인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배우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946만명 중 98만명이 치매로 추정된다. 노년층 10명 중 1명 이상이 치매인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치매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서고 2050년엔 300만명을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구로구 역시 올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65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 수는 7141명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 구로구 내 실종신고 중 43%가 치매환자였다. 이번 모의훈련 역시 이같은 배경에 따라 진행했다.

나아가 구로구는 모의훈련에 참여한 시장상인회와 학생, 4개동 치매안심마을 통장 등 400여명을 치매 노인 실종 예방 지킴이로 양성할 계획이다. 이들은 치매 노인의 행동과 특성, 배회 인식표 등 치매 노인 표식, 실종 시 대처법 등을 배우고, 안전 돌봄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8일 서울 구로구 고척근린시장에서 진행된 치매 노인 실종 모의훈련에서 실종 예방 캠페인 부스가 운영되고 있다.(사진=이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