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 떠나는 박남기 교수 “사교육 경감 한계 인정해야”

사회

이데일리,

2024년 11월 30일, 오전 08:40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경쟁우위형 사교육은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받기 때문에 실력 기준의 현 대입제도 하에서는 줄이기 어렵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사진=이데일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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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둔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의 ‘사교육 현실론’이다. 박 교수는 29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교육을 △돌봄형 △기초학력 보충형 △예체능 특기형 △경쟁우위형으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돌봄형이나 기초학력 보충형 등은 공교육 틀로 흡수가 가능하나 경쟁우위형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론을 폈다.

그는 “방과후학교나 늘봄학교, 기초학력 미달 학생 개별지도 등을 통해 돌봄형이나 기초학력 보충형 사교육은 크게 줄일 수 있다”면서도 “예체능 사교육도 방과후학교를 통해 경감할 수 있지만 고급 과정은 줄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현행 대입제도 하에서는 경쟁우위형 사교육 경감이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초등학생 자녀를 최장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봐주는 늘봄학교를 출범시켰다. 기존 방과후 학교와 돌봄교실을 통합한 형태다. 하지만 이는 돌봄형이나 기초학력 보충형, 예체능 사교육 정도만 흡수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상위권 고교·대학을 지향하는 경쟁우위형 사교육은 공교육 내에서 소화, 경감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사교육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동안 사교육은 우리 학생들의 실력을 키우는 것을 비롯해 여러 유형의 기여를 해 왔다”며 “경쟁우위형 사교육은 과학고나 외고 학생들도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받기 때문에 줄이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의미 있게 진행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컨대 교육청이나 학교가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원 등과 협약을 맺고 저소득층 교육 지원 정책에 참여하게 하자는 의미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교육 이용이 가능한 바우처(이용권)를 지원해주는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지금도 방과후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학교가 외부 강사를 채용하고 있다”며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방과후 형태로 사교육 이용 바우처를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대입제도 역시 우리 교육계의 난제로 꼽았다. 그는 “무한경쟁·승자독식·실력주의로 규정할 수 있는 우리 사회에선 승자의 기준이 출신 학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한 입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향후 대입제도 개편 방향으로는 ‘이원화’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부모의 영향력을 가능하면 철저히 배제한 후에 공정하고 타당하며 객관적 기준에 의해 선발하는 전형은 앞으로도 우리 입시제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면서도 “더 나아가 입시제도가 미래역량, 고급역량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했다. 창의적 재능이나 사고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입시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고급역량을 제대로 기르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를 위해 경쟁이 치열한 대학·학과의 사회통합 전형 비율을 지금보다 더 늘리는 방식, 즉 두 줄 세우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성적·실력 위주의 전형 외에도 사회통합 전형 확대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선발 비중을 늘리자는 제안이다.

교권 침해 문제에 대해선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이 고초를 겪는 원인 중 하나가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인데 이 부분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아동학대처벌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사가 적극적으로 교육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해법 중 하나는 아동학대로 고소당하거나 신고당했을 경우 교사는 뒤로 빠지고 모든 대응을 교육청의 전문 인력이 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교사가 직접 대응하게 되면 설령 승소하더라도 소송 과정에서 교사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민간 기업에서 직원이 직무 관련 사항으로 피소되면 회사가 나서서 모든 대응을 하는데 만약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다면 나쁜 기업으로 불릴 것”이라며 “현재 국가와 교육청은 나쁜 기업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교사가 패소하면 교육청이 해당 교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 교사가 직접 소송에 나설 경우 그 교사 담당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으로 교권 침해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학생생활지도 고시를 발표, 문제 학생을 분리 조치할 수 있게 했다. 박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학생 격리권 행사와 절차도 간소화해야 한다”며 “정해진 경고 1회 이상을 넘길 경우 학교의 격리 담당자에게 전화하면 즉시 문제 학생을 데려가야 하고 교사는 수업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학생들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내년 도입할 예정인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에 대해서도 “어느 경우든 활용 과정에서 교사들에게 좀 더 자율권을 주는 방향이 돼야 한다”며 “초등학생의 경우 이제 막 취학한 학생들이기에 AIDT를 활용하더라도 필기하면서 수업받도록 하는 아날로그식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교육행정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급경영연구소장 등을 거쳐 2008~2012년 광주교대 총장을 역임했다. 총장 이임 후에는 평교수로 복귀, 후학 양성에 매진해왔다. 장학금을 포함한 발전기금 1억을 학교에 기부했으며 ‘최고의 교수법’, ‘실력의 배신’ 등 교육계에 영향을 미친 20여 권의 저서와 약 10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박 교수는 내년 2월 정년퇴임으로 30여 년간 정들었던 대학 강단을 떠나게 된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26일에는 광주교대 초등교육과·특수통합교육과 학생회가 나서 선물·꽃다발 전달식을 열었다.

박 교수는 이 자리에서 “어제 신임 교수로 발령받은 듯 기억이 또렷하다. 매 순간 늘 신임 교수처럼 살아왔는데 이제 떠날 때가 됐다”며 “미래를 열어놓고, 매일 주어지는 시간에 감사하며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큰 후회 없는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정년퇴임 후에도 교육 분야 연구와 저술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