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적자에 세제 ‘무용지물’…“직접 환급·제3자 양도 절실”

경제

이데일리,

2025년 3월 13일, 오후 06:56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국내 이차전지(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기존 세액공제 혜택이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는 법인세 세액공제 방식이어서 영업이익이 발생해야만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익이 나지 않아도 세액공제분만큼 현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직접환급제를 도입하고 미사용 세제를 제삼자에게 양도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배터리 업계는 입을 모은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이차전지 포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소재산업 경쟁력 강화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10조 지원 나선 日…K배터리 ‘기울어진 운동장’

박재범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이차전지 포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소재산업 경쟁력 강화 토론회’에서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다”며 “한국은 다른 국가 대비 정책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제치고 글로벌 배터리 1위로 올라선 중국은 자국산 제품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기차부터 배터리 셀, 소재까지 이어지는 자체 공급망 가치사슬(밸류체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중국은 흑연을 제외한 광물 매장량 자체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저렴한 인건비와 정부 보조금을 앞세워 전 세계 공급망을 장악했다.

중국 지방정부는 소재 기업에 무상으로 토지를 제공하고 인건비를 지원하는 한편 산업단지 인프라를 제공하고 각종 환경규제를 완화하는 등 전폭적 지원을 하고 있다. 이에 중국 음극재 생산량은 2012년 2만8000톤(t)에서 2016년 12만3000t으로 4년 만에 4배 증가했다. 4년간 증가율은 연평균 40%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본은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소니를 필두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주도했으나 저렴한 외국산 소재 사용 비중을 늘린 것이 전체 산업 생태계 붕괴를 초래했다. 최근에는 소재 산업 부활을 위해 자국 내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1조엔 투자를 결정하고 정부가 3500억엔을 보조하기로 했다. 배터리 부품·소재 기업이 생산설비를 신·증설하면 정부가 개별 보조금도 지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년째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조차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소재 기업들은 캐즘과 중국발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향후 2~3년 사이 집중 투자가 필요하며 그 이후에 투자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평가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은 “앞으로 2~3년이 배터리 산업의 골든타임”이라며 “우리나라가 슈퍼사이클 국면에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선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포스코퓨처엠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에서 제조설비를 가동하고 있다.(사진=포스코퓨처엠)
◇“中 공급망 장악, ‘배터리 요소수 사태’ 불러올 것”

배터리 소재 업체들은 중국과 원가 경쟁 열위로 생존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한미향 포스코퓨처엠 실장은 “중국이 공급망을 장악하면 ‘요소수 사태’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적자를 본 국내 업체들이 투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버텨 나가려면 생산 보조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포스코퓨처엠(003670)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극재를 생산하는 업체이나 지난해 공장 가동률이 20%대까지 떨어졌다. 흑연을 주로 사용하는 음극재는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의 94%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이 2026년까지 유예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해외우려단체(FEOC) 적용에 중국이 포함된 만큼 음극재는 우리나라가 반드시 자립을 이뤄내야 하는 핵심 소재다.

비싼 산업용 전기요금 탓에 국내가 아닌 해외로 생산기지 이전을 검토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상근 고려아연 기획본부장은 “울산에 1만3000t 규모의 전해 동박 공장을 건설하고 6만t까지 증설할 계획이었으나 그 사이에 전기료가 2배 상승했다”며 “전해 동박은 전기 분해를 통해 만들어 가공비 대부분이 전기요금인데 이런 상황이면 증설이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황태훈 SK넥실리스 글로벌전략실장도 “전기요금 상승 탓에 국내 생산하는 것보다 해외에서 생산해 한국으로 가져오는 비용이 더 저렴하다”며 “국가 기간산업이자 전략산업인 배터리의 국내 공동화 현상을 그대로 바라봐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릴 미래 배터리 소재 분야 투자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향후 3~5년이 지나면 중국에 음극 집전체의 90% 이상을 잠식당할 위기”라며 “국내 기업들이 전고체 배터리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배터리사와 소재사 공동 연구개발(R&D)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도 국내 배터리 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검토 중이나 미국 IRA와 같은 직접 환급제 도입에 대해선 신중한 분위기다. 김태훈 기획재정부 공급망대응담당관은 “직접환급제는 기재부 세제실과 협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을 주최한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금을 낼 상황이 안 되는데 법인세를 감면해 줘봤자 효용이 없다는 배터리 업계의 의견에 공감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기재부는 직접환급제가 국가 재정의 문제인 만큼 어렵다는 입장이나,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전체 직접환급제 도입은 어렵더라도 국가 재정이 감당하는 범위 내에서 일정 부분을 환급하는 방안 등을 담아 입법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